[ET칼럼]영상상봉과 영상정상회담

엊그제 남북 장관급 회담이 서울에서 시작됐다. 지난해 5월 평양 회담 이후 13개월여 만이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회동으로 대화 분위기가 어느 때보다 성숙된 상황이어서 회담 성과에 대한 기대가 크다. 핵문제 등 의제는 많지만 이산가족의 관심사는 중단된 이산가족 상봉과 영상 상봉이다. 특히 영상 상봉은 지난 17일 평양 면담에서 정 장관과 김 위원장이 ‘경쟁적으로 준비해 8·15에 첫 영상 상봉을 추진하기로 합의’한 사안이다. 김 위원장은 영상 상봉에 대해 “매우 흥미있고 흥분되는 제안이며, 좋은 아이디어”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래서 결과가 더 주목된다.

 우리 측이 먼저 제안한만큼 구체적 실천방법을 모색하기 위한 우리 정부 당국의 발걸음은 빠르다. 우리 측은 이미 영상 상봉을 위해 태스크포스까지 구성한 상태다. 장관급 회담에 앞서 기술적 방법 논의는 물론이고 네트워크를 비롯한 관련 인프라도 점검했다. TV방송을 통한 만남, 영상 전화, 영상 채팅 등 방법이 다양하고 기술적으로도 큰 걸림돌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제 남은 것은 선택뿐이다. “7∼8가지 상봉 방안을 마련하고 있지만 북측의 사정과 형편을 보아 가며 진행할 것”이라는 정부 당국자의 말을 고려하면 공은 이제 북측으로 넘어갔다.

 이산가족 영상 상봉은 이미 오래 전부터 거론돼 왔다. 방송사 등 민간 차원에서는 실질적으로 추진되기도 했다. 개별 사례지만 팔순을 훌쩍 넘긴 한 실향민이 중국 땅에서 북한에 있는 누나와 ‘휴대전화 상봉’을 해 화제가 된 적도 있다. 2002년에는 남북 민간회사 간 이산가족 인터넷 영상 면회사업이 추진되기도 했다.

 이산가족 상봉은 지금까지 11차례 이루어졌다. 매번 100명으로 제한해 왔다. 이산가족은 100만명이다. 1만분의 1명씩만 상봉한 것이다.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매달 한 차례씩 상봉하더라도 1년에 1200명, 800여년이나 소요되어야 다 만날 수 있다. 날마다 이산의 한을 풀지 못한 채 병석에서 신음하고 숨져 가는 70, 80대 이산가족이 많다. 영상 상봉 얘기가 나온 이유다.

 남북 이산가족이 만나 서로 끌어안고 눈물을 흘리는 장면은 TV 시청자들 가슴을 에게 한다. 영상 상봉은 체감은 덜하겠지만 분단 이후 50여년간 서로 생사를 모른 채 살아온 이산가족에게는 희망이다. 화면으로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다. 이미 상봉한 이산가족이라고 고통이 없는 것은 아니다. 상봉을 끝낼 때 오열과 통곡의 눈물바다로 변하는 것은 생전에 재회를 기약할 수 없다는 체념 때문이다.

 영상 상봉은 그래서 ‘흥분되는 제안’인 것이다. 직접 상봉보다 돈이 덜 들고 간편해 많은 사람이 만날 수 있다. 물론 인프라만 갖췄다고 해결될 사안은 아니지만 생사와 주소가 확인된 이산가족의 상봉에 큰 전기가 될 것은 분명하다. 이것이 활성화되면 그야말로 ‘혈육의 조건 없는 만남’이 이루어질 것이다.

 8월 15일 광복절 전후로 이루어질 영상 상봉이 제대로 성사되려면 북측의 협력이 필수적이다. 북측은 이산가족의 고통을 더는 외면해서는 안 된다. 이산가족들의 기대가 실망으로 변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

 김 위원장은 하루에 2시간 이상 인터넷 서핑을 하는 인터넷 마니아라고 한다. 노 대통령도 인터넷상에서 결재한다. 카메라만 설치하면 남북 정상 간 영상 채팅도 가능한 것이다. 이산가족 영상 상봉이 무르익으면 언젠가는 남북 영상 정상회담이 열릴지도 모르겠다.

◆윤원창 수석논설위원 wcyoo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