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칼럼]독일 통신통합의 시사점

6·15 공동선언 5주년 행사는 상당히 의미 있었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간 면담이 이루어지면서 남북 장관급 회담 및 8·15 광복절 행사시 남북 이산가족 영상상봉까지 합의했기 때문이다. 대외적으로도 6월 초 미국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양국 정상이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 원칙에 합의하는 등 북핵 문제를 둘러싼 대내외 환경이 좋은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는 것 같다.

 이처럼 남북관계는 북핵 문제와 같은 변수들에 의해 경색되기도 하지만 지속적인 남북대화와 협력강화를 통해 부문 간, 지역 간 교류는 필연적으로 활성화될 것이다. 이런 차원에서 남북한 통신도 통일에 대비해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통신은 전체 산업의 근간이 되는 하부구조로서 통일을 준비하는 데 중요한 분야고, 통합이 빠를수록 통일시 통신망 구축에 들어가는 비용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나서지 않으면 북한의 통신 시장은 중국 등 외국 기업에 의해 선점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같은 사회주의라는 체제 동질성을 갖고 북한의 거의 모든 경제 부분에 활발히 투자하고 있는 중국이 선점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북측의 뜻있는 사람들도 이 점을 우려하고 있다. 만일 이들이 북한 시장을 선점한다면 그들의 기득권은 남북 통신 통합에 어떤 형태로든 상당한 장애요소가 될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남북 통신 통합에 대한 장기적 마스터플랜을 갖고 그 계획에 따라 북한의 변화에 기민하게 대응해야 한다.

 남북 통신 통합계획을 수립하는 데 있어 통일독일의 통신 통합과정은 우리에게 좋은 모델이 될 수 있다. 1970년부터 1990년 통일되기까지 서독과 동독은 지속적인 상호 협의하에 통신교류에 대한 협정 체결 등으로 통합 준비과정을 착실하게 거쳐 실제 통일 시점에 ‘텔레콤(Telekom)2000’이라는 통신 투자계획 프로그램으로 통신 통합을 점진적으로 추진해 가는 ‘교류-협력-통합’의 3단계 방식을 취했다. 이 계획에 따라 추진된 독일 통신 통합 결과를 살펴보면 몇 가지 중요한 시사점을 발견할 수 있다.

 첫째, 통일국가 전체의 통신망을 점진적으로 확대 구축하였다는 점이다. 동독지역뿐만 아니라 서독지역에도 신기술을 이용한 통신망을 점진적으로 구축하여 연동문제 등을 해결한 것이다. 우리도 개성공단을 시작으로 경협지구 확대에 따른 통신망 구축 등 교류와 협력단계를 거친 후 점진적으로 확대 통합해 가는 방안을 생각해 볼 만하다.

 둘째, 통신 수요를 예측할 때 기존 데이터나 추세를 적용하는 정량적 분석을 이용할 수 없다는 점이다. 독일 통일 초기에 사회주의 체제로 인해 통신경험이 부족했던 동독 주민들이 전화신청을 회피하는 바람에 수요 예측에 괴리가 컸다. 그러나 이후 통신을 통해 새로운 정보 획득과 인적 접촉의 기회가 많아짐에 따라 통신 이용량이 급증했으며 특히 청소년층과 직업을 가진 사람이 새로 제공되는 통신서비스에 신속하게 적응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러한 사항들은 남북 통신 통합에 따른 수요 예측시 종합적으로 고려돼야 할 것이다.

 셋째, 여러 민간 기업을 배제하고 독일통신공사에 통신망을 구축하게 했다는 점이다. 여러 기업에 경쟁적으로 맡길 경우 이익이 많이 발생하는 특정 지역에만 투자하는 소위 ‘크림 스키밍(cream skimming)’ 현상이 발생할 수 있어 체계적이고 전국적인 통신망 구축에 한계가 있다는 점을 고려했다.

 넷째, 유선전화와 이동전화 간 경쟁관계 등을 감안해 ‘PCN-Mobile’이라는 이동전화 라이선스를 당초 계획보다 3년이나 늦게 선정하는 등 이동전화 시장 진입의 시점 조절로 유무선통신의 동반 발전을 꾀했다는 점이다. 상대적으로 신속하게 망을 구축할 수 있는 이동전화가 음성서비스를 선점할 경우 유선음성통신은 부수적인 서비스로 전락하게 되어 유선통신망 구축을 기피하거나 구축을 하더라도 데이터통신(초고속인터넷)에 편중됨에 따라 유선 데이터망(초고속인터넷망) 요금을 상승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점을 감안한 것이다.

 물론 독일과 남북한이 처한 상황과 시점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독일의 사례를 남북한 통신 통합에 바로 적용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겪었던 시행착오와 경험은 남북한 통신 통합을 계획하고 추진해 나가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따라서 독일의 경험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남북 통신 통합에 대한 장기계획을 수립하고, 그 계획에 따라 가능한 것부터 차근차근 실천하여 통신 통합의 기반을 닦아야 할 것이다.

◆김병주 (KT 사업협력실 남북협력담당 상무) kkbj@k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