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 탐험의 역사·레지널드 터닐 지음·이상원 옮김·성우 펴냄
오는 20일은 닐 암스트롱이 아폴로 11호를 타고 달에 날아가 첫 발걸음을 내딛은 지 36년이 되는 날이다.
지구와 역사를 함께 해온 달이지만 그 탐사의 역사는 극히 짧았고 달 탐사 의도 역시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성과와 달리 좋지 못한 평가를 받고 있다. 인류의 달 탐사는 미·소 냉전이 극에 달했던 케네디 행정부에서 시작돼 모두 6차례 이뤄졌다. 하지만 닉슨행정부(72년) 이후, 인류는 다시는 달을 방문하지 않았다.
최근 출간된 ‘달 탐험의 역사’는 BBC 기자로 40여년간 우주 항공분야만을 취재해온 터닐 기자가 인류 달탐사의 모든 것을 정리한 책이다. 달 탐사가 시작된 역사적 배경부터 머큐리, 제미니, 아폴로 프로젝트로 이어지는 미국 달탐사 프로그램과 미·소의 우주경쟁을 현장감 있게 되짚어보고 달탐사에 관한 알려지지 않은 일화 등을 소개하고 있다. 특히 과학적 이론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동서 대립이 극에 달하고 미·소 양국이 우주 공간의 군사적 잠재력을 주목하게 된 당시의 시대 분위기 속에서 달 탐사가 어떤 의미가 있었는지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책은 필자가 영혼을 악마에 팔아버린 인물로 평가한 ‘베르너 폰 브라운’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로켓 개발의 선구자이자인 폰 브라운은 새턴 로켓을 개발해 인류의 달 탐사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하지만 2차대전 당시 나치를 위해 V 2로켓을 개발해 전 유럽을 공포에 떨게 한 과학자라는 비난도 동시에 받고 있다. 그의 지휘 아래 있던 도라-미텔바우 지하공장에서는 과로와 굶주림으로 2만명의 강제노동자들이 죽어나갔지만 그는 독일의 패전을 눈앞에 두고 정치적 교섭력으로 전쟁포로에서 마셜 연구센터 소장으로 변신하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필자는 달탐사의 토대가 이 같은 ‘끔찍한 불의’에서 마련됐지만 탈 탐사를 이끈 실질적인 힘은 ‘우주 기술에 앞선 나라가 군사적으로 우위를 차지하게 될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이었다고 단정한다. 순수한 과학적 도전이자 인류의 승리라는 숭고한 과업 이면에는 일촉즉발의 미·소 냉전상황에서 나사의 우주계획은 군사적 의도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는 것이다.
실제 나사는 우주공간의 평화적 사용을 추구한다는 목적하에 설립됐고 지도부 역시 군으로부터의 독립을 유지하려고 애썼지만 나사의 우주계획은 미 국방부 주도의 군사적 계획아래 추진돼 왔다.
닐 암스트롱과 아폴로 11호로 각인돼 있는 인류 달 정복의 이면에 감춰진 에피소드도 다수 있다. 달 탐사로 대중적 이득을 얻으려는 정치권의 계산하에 TV쇼의 게스트로 전락한 우주인들과 이를 거부해 우주비행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당한 비운의 우주비행사들, 정치적 선전목적으로 꼭두각시로 전락한 유리 가가린 등의 이야기가 흥미롭다. 또 아폴로 1호의 화제로 허망하게 분사한 3명의 우주비행사, 우주 개발 경쟁에서 벌어진 참사들,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는 달 탐사 조작설의 진위 등도 읽을 만하다.
이규태기자@전자신문, kt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