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조직이나 그렇듯 ‘공채 1기’에 대한 기대는 조직에 대한 책임론이다. 우리나라 조직문화의 특성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정순경 방송위 방송통신구조개편기획단장(49)은 현재의 ‘통합방송위’ 전신인 구 방송위 공채 1기다. 위원회 형태라서 사무처 직원의 최고참 직급이 실국장인데 그는 국장급만 벌써 10년째다.
‘공채 1기에 대한 책임감’을 말하는 정 단장은 방송위 최고참답다.
그는 현재의 통·방구조개편 논의의 어려움을 잘 안다. “98년 방송개혁위원회에 실행위원으로 참여해 통합방송위를 만들때보다 지금이 훨씬 상황이 안 좋다”며 “당시는 공보처 폐지와 방송위 독립에 대한 사회 전반의 합의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지금 통·방구조개편 논의 바탕엔 이런 사회적 합의가 없는만큼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합의를 이끌어내야한다는 설명이다. 정 단장이 가진 방개위 활동 경험은 그래서 소중하다.
불교신자인 정 단장은 삼천배하는 심정으로 얽힌 논의에 임하고 있다. 지난 2002년 백련암에서 실제 삼천배를 드린 적이 있다는 정 단장은 “통·방융합 서비스는 없다”는 지론으로 정통부 논리에 맞섰다.
“케이블망이라던 광동축혼합망(HFC)에서 이제 초고속인터넷 서비스를 하고 휴대폰에서 TV를 본다”며 “망과 단말기는 방송·통신융합”고 말했다. “그러나 융합된 망과 단말기를 통한 서비스는 여전히 방송서비스이고 통신서비스”라고 설명했다. 결합일 뿐 방송과 통신서비스의 속성이 살아있다는 셈.
통·방결합을 푸는 실마리로 정 단장은 통신의 보편적 서비스 개념을 제시했다.
“통신의 보편적 서비스 개념은 사실 방송의 공공성 개념과 상당 부분 맥이 닿아 있다”고 말했다. 정통부가 말로만 보편적 서비스를 얘기하며 정작 사문화시키고 정책은 사업자 위주로 끌고 간다는 은근한 비판이 녹아 있다.
그는 논란의 초점인 ‘통·방구조개편위의 위상’에 대해 당연히 대통령 산하을 주장했다. 정부 부처가 아닌 방송위가 총리실 산하에서 통합 및 구조개편을 논하는게 모순이기 때문이다.
정 단장은 24년간 방송위에 머물며 온갖 변화를 거쳤다. 80년대 언론기본법에 맞춰진 방송, 89년 언론기본법 폐지와 방송법 체제, 92년 종합유선방송법, 98년 방개위, 2000년 통합방송법이 그것이다. 그는 이제 ‘공채 1기’로서 후배에게 남길 방송의 모습을 그려보고 있다. 이는 후배 뿐아니라 통신·방송산업에 남길 틀이기도 하다.
성호철기자@전자신문, hcsu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