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디자인이 기업의 성패를 좌우할 수 있는 시대가 도래했다. 휴대폰 디자인 경영시대가 다가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특히 모바일 컨버전스의 총아로 불리는 휴대폰은 디자인 경쟁력이 제품의 운명을 가르는 핵심 성공요인으로 떠올랐다. 기술적 차별화 요소가 줄어드는 대신 휴대폰의 패션화가 가속되면서 단말기의 형태·색상 등 디자인이 중요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국내 휴대폰 기업들의 디자인 현주소를 살펴보고, 휴대폰 분야 최고 디자인 책임자(CDO:Chief Design Officer)들로부터 디자인 경영 현황과 계획을 들어보는 코너를 마련한다.
글 싣는 순서
1회 : 프롤로그 - 미래 휴대폰 디자인 언어로 통한다
2회 : 애니콜 신화창조의 산실, 삼성 디자인 경영센터
3회 : 글로벌 톱3 일군다, LG전자 디자인연구소
4회 : 세계 최고 품질을 지향한다, 팬택앤큐리텔 디자인연구소
5회 : 디자인 혁신을 선도한다, SK텔레텍 디자인연구소
6회 : 글로벌 CDMA 전진기지, 모토로라코리아 디자인연구소
7회 : 디자인 R&D 최고를 꿈꾼다, 벨웨이브 연구소
8회 : 벤처 신화를 실현한 브이케이 연구소
9회 : 참신함으로 승부한다, KTFT 연구소
“이 사장! A-800보다 넓고, 두께는 얇은 폰을 만들어 보는 게 어떻겠소?”
평소 A-800단말기에 깊은 인상을 가졌던 이건희 회장은 오키나와 회의 직후 이기태 정보통신총괄 사장에게 A-800을 들어보이며 이렇게 주문했다. 불과 몇 달 후 삼성전자는 세계가 깜짝 놀랄 만한 T-100을 국제시장에 선보였다.
일명 이건희폰으로 불리는 이 제품은 사상 처음으로 판매량이 1000만대를 돌파했다. 애니콜 신화로 전국체전을 제패했던 삼성전자에는 국제 올림픽에서도 메달 석권의 가능성을 입증하는 계기가 됐다.
삼성전자는 이건희폰에 이어 벤츠폰·블루블랙폰 등 히트상품을 연이어 내놓고 글로벌 휴대폰 기업으로 성장했다. 이들 상품의 성공에는 기능적 차별화는 물론이고 디자인 경쟁력 확보가 큰 힘을 발휘했다.
◇‘휴대폰 디자인 강국 코리아’=사실 각종 조사에서 우리나라 기업의 일반 디자인 경쟁력은 아직 선진국에 비해 취약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우리 기업의 디자인 경쟁력을 100으로 볼 때 일본은 136, 유럽과 미국은 각각 122, 121로 우리와 상당한 격차를 보이고 있다. 우리의 디자인 경쟁력 수준은 일본의 74%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휴대폰 디자인 분야에서만큼은 한국도 디자인 강국으로 불리는 유럽·일본에 뒤지지 않는다는 게 업계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오히려 한 발 앞서가고 있다는 평가도 나오는 것이 현실이다.
이제 삼성전자 디자인경영센터에서 소니·마쓰시타 등 일본 전자업계 제품개발자들의 모습을 찾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지난 93년 이건희 회장이 신경영을 표방한 뒤 일본 전자업체로 시찰단을 보낸 후 12년 만에 역으로 소니 등 일본 업체들이 삼성전자 디자인을 벤치마킹하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삼성전자·LG전자·팬택계열 국내 빅3 업체는 세계 3대 디자인상으로 불리는 레드닷, if, IDEA의 디자인상을 매년 수상하면서 위상을 드높이고 있다. 올해 들어 그 동안 MP3P 등 디지털기기에서 모방상품(Me-too)을 만들어왔던 중국 휴대폰 업체들이 한국 휴대폰 베끼기에 나서는 것도 우리 휴대폰 디자인의 경쟁력을 가늠케 한다.
◇‘디자인, 제품 경쟁력의 원천’=휴대폰 산업에서 디자인의 중요도는 얼마나 될까. 현재까지 디자인과 휴대폰 판매량의 상관관계를 나타내는 정량적인 수치를 찾기는 어렵다.
하지만 휴대폰의 경쟁요소가 기술에서 감성으로 전환되고, 기술적 차별화 요소가 적어지면서 디자인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특히 10∼20대 젊은 소비자들은 제품 선택시 품질, 가격보다 디자인을 중시하는 소비패턴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반영하듯 올 상반기 글로벌 휴대폰 업계를 강타한 모토로라의 레이저와 삼성전자 블루블랙폰은 혁신적인 디자인을 통해 히트상품으로 떠올랐다. ‘가장 얇은 휴대폰’ 레이저는 전세계 소비자들을 열광시키고 있고, 블루블랙폰은 디자인은 물론이고 컬러마케팅이라는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전문가들은 이 두 제품이 성공한 공통분모를 제품전략의 출발점으로 디자인이 채택됐기 때문으로 분석한다. 디자인은 이제 시장조사, 제품기획에서 이어지는 개발 프로세스의 일부분이 아니라 경쟁력의 원천이 됐다. 디자인이 종(從)의 위치에서 주(主)의 개념으로 바뀌고 있다. 휴대폰은 이제 품질경영에서 디자인 경영의 시대로 전환됐다.
박승정·김원석기자@전자신문, sjpark·stone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