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식 경영에서 배운다](3)교토기업과 한국의 IT부품기업

벤처 열풍이 한반도를 휩쓸고 간 이후 우리나라에서도 장기불황에 대한 얘기들이 나온다. 경영 경제계에는 불황인가 아닌가 하는 논란서부터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까지 논의중이다. 이웃나라인 일본의 경제가 장기 침체에 빠져있다는 점을 들어, 일본을 벤치마킹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일본 경제의 성장축이던 전통적인 일본의 대기업들의 부침과 함께 소리없이 묵묵히 성장해온 교토의 기업들이 최근 국내에서도 관심대상이다. 지난 5월 발간된 삼성경제연구소의 ‘교토식 경영’에 대한 보고서가 화제를 불러일으키며 국내 정보기술(IT) 업체들에 또 다른 경영 지침이 되고 있다.

국내 기업들의 모범이 되었던 기존의 일본 대기업들보다는 ‘베일’에 싸여있던 교토 기업들의 경영 형태가 어쩌면 이들에게 더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특정사 공급보다 범용성에 초점=교토의 주요 기업들은 모두 자기 분야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기술로 특정 고객사에 종속적이지 않다. 이는 국내 업체들과 큰 차이를 나타낸다. 국내 IT 기업, 특히 부품 업체의 경우 한 두 개 대기업을 위해 제품을 개발하고 납품하는 것이 최대의 목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실적으로 내수 기반으로 출발할 수밖에 없다고 하더라도 특정 기업향 제품만 만들다 보니, 대기업 거래처가 등을 돌려버리면 회사의 매출이 크게 하락하는 등 문제가 발생한다.

이러다 보니 국내 많은 부품 회사는 자기만의 기술, 자기만의 계획대로 움직이기보다는 특정 기업의 하청 공장으로 전락한다. 결국, 저수익 구조 속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독점 공급을 강요하는 대기업의 눈치에 따라 성장의 기회마저 잃고 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세계 시장 진출을 꿈도 못 꾼다. 대부분의 부품 기업들은 수출 비중이 얼마냐는 질문에 대해 해외로 직수출하는 비중을 공개하기보다는 대기업의 완제품 수출 속에 자사 제품이 포함됐다는 점만을 강조할 뿐이다.

인재 수급도 차이가 난다. 국내 기업들은 기존의 인사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채 인재를 유인할 수 있는 인센티브제 등에 대해서도 미흡하다는 것이 업계의 증언이다. 그러다 보니 우수 인재들이 창의적인 기술 개발에 대한 열의보다는 유지 보수 쪽에 비중을 둔다는 지적이다.

◇독창적 기술, 글로벌 시장을 지향한다=교토식 기업들이 불황에도 높은 성장률을 보일 수 있던 것은 기술과 글로벌 시장에서 나왔다. 이들은 시장의 흐름을 철저하게 파악하고 안정적인 시장 속에서 설비의 효율화 등을 통해 원가경쟁력을 높임으로써 경쟁사를 물리쳤다.

특히 이들의 제품은 일종의 ‘모듈화’ 작업을 통해 기존의 제품을 호환할 수 있게 함으로써, 고객사들이 완제품을 설계할 때 자사의 제품으로 원활하게 교체될 수 있도록 했다. 이러한 전략은 세계 시장에서 주효했고 기존의 높은 가격으로 시장을 차지하던 밀어냈고, 이제는 경쟁사들이 도태되면서 사실상 독과점 형태로 시장을 선도하게 됐다.

이쯤 되자, 이제는 이들의 거래처들과의 관계가 종속적인 ‘갑과 을’ 관계가 아니라 수평적인 협력자 관계가 설정됐다. 일부에서는 교토 기업들의 제품을 먼저 안정적으로 수급 받는 일이 제품 생산의 관건이 될 정도로 관계가 역전되기도 한다고 관계자들은 전했다.

삼성경제연구소 양준호 수석연구원은 “국내 기업들이 종속적 관계 탈피를 위해서는 우선 새로운 분야에서 교토의 기업처럼 표준화를 통해 해외 업체로 눈을 돌려야 한다”고 조언했다.

◇독창적으로 경영방식 창출=하지만 교토식 경영이 일본의 전통적 경영 방식 및 국내의 기존 방식을 완전히 대치하는 것은 아니다. 양준호 수석연구원은 “교토라는 풍토와 부품 업체 등을 중심으로 이러한 경영방식이 유효했다는 점을 주목하고 우리 나름대로 소화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국내에서는 일부 지역에서만 클러스터가 형성되어 있을 뿐 교토와 상황이 다르며, 현실적으로 대기업 의존성을 벗어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존의 부품 산업이 특화 기술을 확보할 수 있도록 중장기 계획을 짜는 동시에 유연성이 강한 벤처기업을 활성화해야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벤처기업 가능성이 큰 국내 풍토를 최대한 활용하고, ‘빨리빨리’ 적응해가는 한국적 방식과 교토식 경영이 주는 긍정점을 조합하면 고유의 방식을 창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양 수석연구원은 “지역적인 비관론에서 벗어나 국내의 전통과 문화를 경쟁 자원으로 인식하고 이를 활용하며 장보고, 개성상인, 보부상 등과 중동건설, 첨단산업, 한류 등을 연구하면 효과적일 것”이라고 귀띔했다.

 

◆기고-교토식 경영이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

- 삼성경제연구소 글로벌경제실 수석연구원 양준호 박사 

교토식 경영이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은 무엇인가. 그들은 한정된 부품사업분야에 특화하고 있으며 그들만의 특화기술이 있다. 바로 이 점은 우리의 기업들도 최종 소비재 또는 세트업체에 종속되지 않고 특화기술을 체화해 조만간 체결이 예상되는 한일 자유무역협정(FTA) 등으로 향후 급변이 예상되는 글로벌 시장경쟁에 철저히 대비해야 할 것을 말해 준다.

교토의 전자IT 부문 10개사들의 공통점을 볼 때, 역시 중소기업 문제의 핵심은 사람, 특히 독창적인 경영자에 있다. 교토의 기업에는 ‘사람’이 존재하고 있으며 ‘기업가’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음을 교토식 경영을 통해 다시금 깨닫게 해 준다.

동시에 우리의 중소기업 경영자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개선되어야 하며 그들이 ‘열린 수평분업구조’하에서 자유롭고 공정한 경쟁을 위한 위험 감수에 대해서는 정당한 보상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또 기업가들의 의욕을 북돋울 수 있는 방안도 강구돼야 한다. 국가차원에서는 기업가들에 대한 창업교육 이전에 기존 기업가들의 의욕을 중시해야 할 것이다.

교토 기업들은 독특한 독자기술로 틈새시장을 노려 승부를 겨루고 있는 점을 배워야한다. 교토기업들은 대기업, 경쟁사가 하지 않는 분야에 도전함으로써 현재의 위상을 확보해 왔다. 또한, 주목해야 할 것은 그들 모두가 글로벌 시장을 염두에 두고 ‘무리한(?) 목표’를 추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우리 기업들도 국내시장에만 안주해서는 안되며, 성능·품질·원가 모두에서 최고를 지향해야 할 것이다.

세계시장을 먼저 공략하고 나중에 국내시장에서 인정받는 ‘선 글로벌 후 내수’도 유심히 봐야한다. 교토기업들로부터 배워야 할 것은 지명도가 낮은 부품기업 또는 지역기업일수록 세계시장에서 인정을 받아야 국내시장 개척이 용이하다는 점이다. 우리 기업들도 정부지원이나 계열기업에 너무 의존하기보다 기업 스스로 역량을 강화하는 데 중점을 두어야 할 것이다.

‘교토식 기업’들의 ‘열린 수평적 분업구조’는 대­중소기업간 갈등이 심각한 우리기업들이 절실히 수용할 필요가 있다. 대기업이 계열하청회사적인 중소기업의 위험을 일방적으로 껴안는 일본적 ‘게이레츠(계열)적 수직적 분업구조’가 아닌 중소기업 스스로 위험을 감당해야 한다. 또 하청관계에 연연하지 않고 세계 속의 어느 기업과도 거래하는 교토기업들의 거래방식인 ‘열린 수평적 구조’에 입각한 대중소기업 간 분업구조가 점진적으로 실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의 중소기업의 미래를 위해서는 ‘성과공유제’ 와 ‘열린 수평적’ 기업 간 분업구조를 위한 정책이 조합되어 시행되어야 할 것이다.

교토 클러스터로부터 기업주도형 클러스터 육성책에 관한 교훈을 추출해 낼 수 있다. 교토를 비롯해 실리콘밸리, 스웨덴 시스타 등 성공적으로 운영되는 클러스터들은 대부분 기업이 주도적으로 클러스터를 운영하고 있다. 우리 국내에서도 기업이 주도하는 클러스터를 발굴하고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파주 단지, 기흥·수원 등의 지역은 교토 클러스터와 같이 발전시킬 수 있는 여지가 많다.

세계 각국의 성장주도지역들은 ‘인재’와 ‘기술’, ‘다양성 수용(관용)’의 특성을 보유하고 있다. 교토기업들의 혁신의 토대는 바로 ‘다양성’을 인정하는 지역문화에 있음을 볼 때 지역의 전통과 문화를 자원으로 인식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따라서 한국에도 지역문화를 살리고 또 그것을 경제활용에 활용할 수 있는 문화적 전략이 절실히 요청된다.

세계적인 디자이너 가와사키 가즈오(川崎和男)는 자기 자신을 스스로 문화 전략가로 부르고 있듯이, ‘문화’를 구석에 쳐 박아 놓지 말고 ‘경제’와 대등하게 끌어 올려서 새로운 경제문화의 장을 만들어야 하며 문화적 전략가의 임무가 재발견되어야 하는 것도 교토식 경영이 주는 큰 교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