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모 컨설팅 업체가 고품질 프리미엄 시장만을 좇는 국내 정보가전 업체들의 일방향 경영을 비판하는 보고서를 내놓아 관련 업계에 회자되고 있다. 이 보고서는 중국 업체들의 저가 제품 공세에 따른 국내 정보가전 시장과 소비자 변화를 예측한 것으로, ‘글로벌 경영’을 내세운 국내 업체들의 미진한 대응이 결국 화를 자초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골자는 이렇다. 중국 업체들이 소량의 저급·저가 제품을 국내 시장에 내놓는다. 국내 업체들은 글로벌 시장을 겨냥한 프리미엄 제품에 집중하면서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다. 중국 제품들이 서서히 틈새시장을 공략하면서 브랜드 인지도를 높여 간다. 다소 위기를 느낀 국내 업체 내부에서 대응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지만 프리미엄 대세론에 밀려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던 저가 시장에서 아예 발을 빼게 된다.
이런 상황이 1∼2년 지속되면서 중국 업체들이 강력한 경쟁 상대로 떠오른다. 국내 업체들이 뒤늦게 방어에 나서지만 가격 경쟁 심화와 마케팅 비용 증가로 그나마 유지하던 수익성도 악화된다. 결국 중국 업체와 경쟁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국내 기업들이 내놓을 최후 카드는 주요 사업 매각 또는 중국 기업과 합작회사 설립으로 귀착된다. 국내 업체들이 백기를 들게 된다는 것이다. 가상 시나리오는 여기서 끝을 맺는다.
문제는 시나리오 전반부에 지적된 내용이 ‘가상’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이라는데 있다. 이미 중국 최대 가전사인 하이얼의 국내 공세가 거세지고 있다. 보고서와 마찬가지로 삼성전자나 LG전자가 손을 뗀 저가 제품 일색이다.
국내 업체 대응도 예상과 맞아 떨어지고 있다. 국내 업체들은 이구동성으로 “국산 제품이 중국산에 비해 기능상 수년은 앞서 있어 크게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고 말한다. 반면 하이얼은 연내에 프리미엄 제품군을 들여올 계획이다.
국내 업체 내부에서 ‘대응’ 목소리가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으나 힘을 받지 못하고 있다. 시나리오 절차를 그대로 밟고 있다.
이 보고서가 지적하는 핵심은 ‘저가 블루오션’이다. 최근 유행하고 있는 블루오션을 빗댄 것으로, 해외 시장에서 고급 제품에만 매진하는 국내 업체들이 안방에서 설자리를 잃어버릴 수도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고가 블루오션’에 힘을 쏟는 만큼 ‘저가’ 시장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할 이유다.
서동규기자@전자신문, dkse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