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에 인생을 걸었다’
오는 27일 클로즈드베타테스트에 들어가는 ‘썬’ 때문에 눈에 핏발이 설 정도로 온 신경이 곤두서있는 조기용 웹젠 부사장(31)은 요즘 부쩍 개발팀 곳곳을 들쑤시고 다닌다. 뭔가 마뜩찮은 것이 있으면 아예 처음부터 다시 만들 각오를 해야한다. 그래서 웹젠내 기술부문 직원들이 그를 부르는 또다른 별명이 ‘시어머니’다.
최고경영자(CEO)인 김남주 사장과 웹젠을 세우고, 대박게임 ‘뮤’를 만들어 회사를 나스닥에 올려보낸 그의 게임인생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완벽함에 대한 고집’ 때문이다.
“‘뮤’가 풀3D의 첫 온라인 구현 작품이듯 웹젠에 대해서는 뭔가 새로운 것을 요구하는 무언의 요구가 압박으로 다가옵니다. 당연히 ‘썬’의 공개가 다가오면서 ‘뮤’ 개발 시절의 고집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인생의 두번째 도전이란 생각으로 개발팀을 독려하고 있습니다”
조 부사장도 여느 개발자처럼 게임에 대한 독특한 심미안을 가졌다. 고교 시절이던 92∼93년경 오락실에서 ‘버추얼파이터’ 시리즈의 3D를 보고, 흠뻑 매료됐다. 이후 ‘뮤’를 풀3D로 기획하고 완성시킨 것도 그 충격 때문이었다.
“혼자서 뚝딱거려 만들어낸 시험용 3D엔진을 하이텔에 올려놓았더니, 당시 잘나가던 미리내소프트에서 함께 일해보자고 하더군요. 그게 21세 되던 해인 95년이었습니다. ‘뮤’도 그때 밑그림 정도가 시작되었지요. 이후 독립해서 서초동 쪽방에서 6명으로 시작한게 웹젠의 출발이었습니다.”
당시 ‘뮤’를 보러 찾아온 일본기업들 마저 “저건 안된다”며 부정적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그것이 조 부사장의 오기에 더욱 불을 지른 격이 되었다. 2001년 5월 오픈베타서비스가 시작되는 날, 마케팅이나 홍보 한번 제대로 해본적 없는 ‘뮤’가 PC방을 휩쓸었다. 첫날 동시접속자수가 수천명에 달할 정도로 당시로선 파격적인 반응이었다. 그의 고집이 제대로된 성공을 낚아 낸 셈이다.
“그때 기억이 ‘썬’을 시장에 내놓아야하는 요즘 더욱 새롭게 다가옵니다. 당시는 2D 일색이던 시장에 3D로 새길을 텄습니다. 하지만 3D 다음에 4D가 존재한다면 고민이 적겠지만, 현실은 3D 안에서 새로운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기존 게임 보다는 훨씬 다음 단계의 품질을 보여줘야하는 것이 웹젠이 가진 고민입니다.”
다행히 ‘썬’을 비롯해 8개 스튜디오에서 진행되고 있는 신작 프로젝트들이 모두 온라인게임의 새 지평을 열어줄 것이란 평가를 얻고 있다. 전 프로젝트를 총괄하는 조 부사장의 ‘새로움의 미학’이 한결같이 관철되고 있는 것이다.
‘썬’의 공개와 함께, 그의 게임인생 2막이 오르는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이진호기자@전자신문, jho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