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공정위가 간과한 것

 추석을 앞둔 지난 주말, 공정위 시리즈 두 번째 편이 방영됐다. 지난 5월 KT에 1000억원대에 이르는 초유의 과징금을 때린 데 이은 후속편이다. 그때와 주제나 배역도 똑같다. 주테마는 여전히 요금담합과 행정지도 그대로다. 주인공들도 공정위, 정통부, KT 등 통신사업자로 변함없다.

 이번 드라마의 백미는 공정위의 오버 연기다. 배역과 주제가 같다 보니 1편과의 차별화 요소로 이를 택한 듯하다. 상급기관이 아닌 공정위가 한 부처의 정책 자체를 잘못됐다고 지적하면서 뜯어고칠 생각이라고 발표한 것은 누가 봐도 지나치다. 또 분명하지도 않은 기준을 내세워 KT를 비롯한 유선통신사업자들이 소비자들에게 무려 1조원 규모의 피해를 줬다고 밝히는 것은 정부기관으로서 가져야 할 기본적인 신중함마저 저버린 발언이다. 사업자들을 국민 앞에 중범죄인을 만들어 극적 효과를 높이겠다는 의도라면 너무 위험한 발상이다.

 공정위의 오버를 소문처럼 ‘규제영역 확대를 위한 의도된 행동’이라고는 보지 않는다. 그보다는 상황 인식의 차이로 해석하고 싶다. 특히 통신산업의 특수성에 대한 몰이해가 가져온 결과로 보인다.

 공정위와 정통부는 흔히 얘기하는 규제철학이 다르다. 잣대가 다르니 그럴 수밖에 없다. 공정위는 소비자 후생, 즉 사용자에게 실질적인 혜택을 제공하느냐 아니면 제한하느냐의 관점에서 모든 것을 재단한다. 반면 정통부는 여기에 산업적인 관점이 추가된다. 국가산업의 경쟁력을 위한 엔진역할을 주문한다. 끊임없는 투자를 통해 최상의 인프라 구축과 최고의 서비스가 가능하도록 감시한다. 큰 틀에서 보면 두 정책은 소비자 후생이라는 목적에 모두 부합된다.

 문제는 통신산업의 특수성이다. 통신은 공공재인 주파수와 천문학적인 규모의 설비투자 등 여타산업에서 보기 힘든 상품 원가구조를 갖고 있다. 게다가 국가의 안위를 좌지우지하는 기간산업이면서 차세대 먹거리를 해결하는 유망산업이라는 복합적인 측면이 동시에 내재돼 있다. 진흥과 규제라는 양날의 정책을 쓸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 때문에 미국(FCC), 영국(오프컴) 등 110개의 선진국에서조차 통신 규제정책에 관한 한 우리의 통신위와 같은 별도의 기관을 두고 있을 정도다. 일반적인 공정경쟁의 틀로서는 규제의 긍정적인 효과를 보기 힘든 구석이 그만큼 많다는 얘기다.

 한 예로 공정위의 주장처럼 담합에만 초점을 맞춰 감시한다면 선발 사업자들의 독점 구조만 파생시킬 수 있는 게 현 통신시장의 생리다. 또 독점으로 인한 폐해는 고스란히 소비자가 떠 안게 되는 게 시장경제의 원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담합은 나쁘니 없어져야 한다’ 식의 단순 논리만 외친다면 이는 ‘도둑질은 나쁘니 없어져야 한다’와 똑같은 구두 선이 될 수밖에 없다.

 결코 통신사업자들의 불법·탈법을 용인하자는 것이 아니다. 이번 건만 봐도 행정지도를 넘어선 사업자 간 순수담합 협의가 분명 짙다. 하지만 그럴 수밖에 없었던 통신사업자들의 고민도 한번쯤은 이해해 봐야 한다. 물론 공정위의 의무사항은 아니다. 해법을 찾기 위해서다. 그것만이 ‘같은 규제라도 내가 하면 선이고 남이 하면 악’이라는 오해에서 벗어나는 길이다. 공정위 규제의 진정성을 확보하는 길이다.

 이런 노력이 선행되지 않으면 사업자들은 여전히 과당경쟁을 벌인다고 통신위에 과징금을 얻어맞고 경쟁하지 않는다고 공정위에 터지는 악순환이 계속될 수밖에 없다. 그러다가 우리의 자랑인 ‘통신강국’은 서서히 ‘과징금 강국’으로 전락할 것이다.

 시중엔 지금 공정위 시리즈 3편이 이동통신 분야에서 이어질 것이라는 괴담이 떠돈다.이번 공정위의 오버는 드라마에서 ‘옥의 티’를 찾는 정도의 교훈에서 그쳤으면 한다.

  김경묵부국장@전자신문, km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