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식 경영에서 배운다](9)무라타제작소와 옴론

교토식 경영이 단순히 교토 지역 기업의 특징이 아닌 ‘경영’이라는 개념으로 발전한 이유는 독특한 회사 운영 방식 때문이다. 연공서열 중심의 일본식 경영도 아니고 합리성만을 추구하는 미국식 경영과도 다른 제3의 길을 선택한 점이 교토식 경영의 핵심이다.

경영 시스템만을 보면 교토 기업 가운데 가장 주목을 끄는 곳은 무라타와 옴론이다. 경쟁이 치열한 제조업에서 고유한 기술 노하우도 있지만 가장 합리적인 경영 시스템이 각자의 분야에서 세계 최고를 자랑하는 무라타와 옴론의 오늘을 있게 만들었다.

◆무라타제작소

기술, 관리, 독창성의 3박자 무라타제작소

무라타제작소는 일본 부품 업계에서도 가장 벤치마크 대상인 기업이다. 이 회사는 세계 세라믹 콘덴서 시장의 50%, 세라믹 필터 시장의 80%를 차지하고 있다. 한 분야에서 이렇게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사례는 찾기 힘들다. 이익률만 보더라도 20%에 육박한다.

무라타제작소가 이처럼 독보적인 위치를 만든 비결은 탁월한 기술은 기본이고 관리와 독창성이라는 경영의 3박자가 갖춰졌기 때문이다.

무라타제작소는 매트릭스 조직으로 유명하다. 회사를 약 3000개의 책임 단위 조직으로 나눈다. 하나의 조직은 공정, 제품, 본사 기능이라는 ‘3차원 매트릭스’로 관리된다.

공정별 비용관리, 설비투자 경제성 계산, 설비 생산성 등 과학적 관리 기법을 이미 90년대 초반부터 도입했다. 그 결과 무라타제작소는 공장 가동률이 60%만 넘으면 이익을 낼 수 있는 구조를 완성, 부품 업계 최고의 이익률을 내는 업체로 성장했다.

내부 단위 조직끼리 제품 거래는 물론 서비스 제공도 비용을 철저히 계산한다. 예를 들어 판매 부문은 제조 부문에게 제품을 사내 거래 가격으로 산다. 이 가격과 외부 고객에게 판매한 가격의 차이가 판매부문의 영업이익이다. 여기에 본사 공통비용인 일반관리비와 연구개발비의 일정 비율을 빼면 순이익이 된다.

사내 거래 가격은 동일하다. 이것도 표준화의 일종이다. 이는 외부 협력 업체와의 거래에서도 그대로 이어져 반드시 복수 견적을 받도록 규정돼 있으며 투명한 이익 구조로 연결된다.

물론 예외도 있다. 언제나 수치만을 고집하면 착오가 나타나기 마련이다. 무라타제작소는 가격이나 납기 등에서 전략적으로 판매를 추진해야 하는 사례에 대해서는 그 전략적 가치를 조직 평가에 반영하도록 만들었다. 생산성 향상이나 불량률 개선, 사내외 공헌도 등 회계상으로 판단하기 어려운 가치 역시 인정해준다.

견적을 받는 과정도 독특하다. 무라타제작소는 신입사원이라도 견적을 쉽게 받는다. 일본에서 견적을 받는다는 것은 철저한 계산과 오랜 경험이 있는 중견 사원의 몫이다. 무라타제작소는 견적에 필요한 모든 요소를 표준화해 데이터만 입력하면 견적의 효율성을 바로 파악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이것이 무라타제작소가 자랑하는 표준화와 모듈화다. 무라타제작소의 주력 제품인 세라믹 콘덴서는 종류가 무려 20만개에 달한다. 다품종 소량 생산의 전형이다. 게다가 고객은 매년 납품 가격 하락을 요구한다. 무라타제작소는 그 해답을 표준화와 모듈화에서 찾았다. 제품 생산에 필요한 장비에서 설계, 제조에 필요한 모든 요소를 최대한 단일화해 비용을 최소화한 것이다.

무라타제작소의 성공은 창업자인 무라타 현 명예회장의 미국 시장 개척이 원동력이다. 1957년 미국으로 건너간 무라타 명예회장은 연줄로 거래가 이뤄지는 일본 시장보다는 제품의 품질과 가격으로 승부하는 미국 시장에 눈길을 돌렸다. 이 시기는 해외 진출에 적극적인 교토 기업 중에서도 가장 빠른 편에 속한다.

미국에서 무라타제작소의 제품이 호평을 받자 일본 내 전자 업체들이 앞다퉈 찾아왔다. 무라타 야스타카 현 사장 역시 미국 뉴욕대학에서 수리통계학을 전공한 후 명예회장이 미국 사업에 힘을 기울일 때 통역으로 일했다. 그 경험을 살려 현재 해외 진출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다.

무라타제작소는 일본뿐 아니라 샌프란시스코와 싱가포르 주식 시장에도 상장했으며 미국뿐 아니라 유럽과 아시아 시장으로 생산 거점과 판매 거점을 늘려가고 있다.

◇회사소개

법인명 : 무라타제작소

설립일 : 1950년 12월

대표이사 : 무라타 야스타카(村田泰隆)

매출 : 4244억6800만엔(2005년 3월 기준)

직원 수 : 2만5924명(2005년 3월 기준)

주요 제품 : 세라믹콘덴서, 필터, 전원장치 등

◆옴론

모듈 경영의 대명사 옴론

옴론은 일본의 대표적인 부품 및 공장자동화 업체다. 1933년 오사카에서 설립됐지만 전쟁의 영향으로 45년 본사를 교토로 이전했다. 본사 이전은 옴론의 전환점이 됐다.

옴론의 사쿠다 히사오 사장은 일본의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와의 인터뷰에서 “만일 오사카에 그대로 있었다면 마쓰시타나 샤프, 산요 등 전후 오사카에서 급성장한 가전 업체의 하청 업체 중 하나에 머물렀을 것”이라며 “교토로 옮기면서 특정 대기업에 의존하지 않고 다양한 기업과 거래한 점이 지분을 인수하려는 대기업의 시도를 막아낸 힘”이라고 설명했다.

대기업에 의한 수직계열화가 생존의 지름길인 일본에서 이처럼 로옴이 독자 노선을 걸을 수 있었던 비결은 독특한 경영 시스템 덕분이다.

옴론은 설립 70년이 넘었지만 경영 개혁에 가장 적극적인 기업의 하나에 꼽힌다. 옴론 경영의 두드러진 특징은 소기업(Company) 제도다. 이 제도는 지난 99년 본격적으로 도입됐지만 설립 초기부터 유지해온 분권주의가 기반이다.

현재 옴론은 사업 부문에 따라 5개의 소기업으로 이뤄져 있다. 임원도 역할이 구분돼 있다. 본사 임원은 전사적인 관점에서 의사결정을 담당하고 소기업 임원은 사업의 운영에 집중한다.

관리와 회계 처리도 소기업 제도에 따른다. 과거에는 소기업 별로 손익계산만 뽑고 실제 자금 이동은 서류상으로만 처리했는데 이제는 사내 자본금 제도를 정비, 각 소기업 별로 실제 자금 관리를 하도록 만들었다.

물론 성과 관리도 철저히 소기업 별로 한다. 이익이나 현금유동성, 성장성 등은 물론 업무 프로세서의 평가까지 각 소기업 별로 진행한다.

사업 진행도 선택과 집중을 앞세운다. 옴론은 ‘일본 내 2위 이내, 세계 5위 이내’의 시장점유율을 유지하지 못하는 사업은 지속하지 않는다. 구조조정으로 경쟁력이 있는 사업만을 유지한다.

옴론은 80년대 이후 완성품에 집중하는 양상을 보였지만 경쟁이 치열해지고 기술 수준이 평준화되면서 이익률이 떨어지자 90년대 들어 다시 부품 분야로 힘을 집중하는 발빠른 변화를 보여줬다.

옴론은 소기업 제도를 기반으로 이른바 ‘모듈 경영’이라는 고유의 경영 시스템을 만들었다. 옴론은 공장자동화기기와 전자부품에서 금융자동화기기, 자동개찰기, 건강기기 등 다양한 영역으로 사업을 확장, 큰 성과를 거뒀지만 단일한 경영 방침으로 끌고 나가기가 어려워졌다. 그래서 나온 개념이 ‘모듈화’다. 이를 통해 소기업 간의 연결과 통합을 모색한다.

옴론의 모듈 경영은 크게 3가지로 구성된다. 우선 인프라 플랫폼을 단일화하는 것이다. 옴론은 네트워크, 보안, 그룹웨어, PC 등 IT 인프라를 전사적 표준에 맞춰 만들었다. 여기에 부품 코드, 부품 표, 마스터 파일 등 업무에 필요한 인터페이스도 단일화했다. 사업 형태에 따라 다른 지원 업무는 각 소기업의 재량에 맡기지만 인사나 경리 등 공통점이 많은 업무는 하나로 통일했다.

두 번째는 의사 결정 플랫폼이다. 옴론은 회사의 경영 철학을 모든 임직원이 공유하도록 만든다. 이를 통해 의사 결정의 플랫폼을 통일한다. 단순히 부품 제조뿐 아니라 의사 결정과 관리 영역에서도 모듈화를 이뤄낸 셈이다.

마지막으로 부품의 모듈화를 들 수 있다. 응용 제품인 판매시점관리시스템(POS)이나 금융지동화기기에 들어가는 부품을 최대한 모듈화해서 개발, 설계, 제조에 이르는 과정의 비용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옴론은 POS나 금융자동화기기도 대부분의 부품이 모듈화된 PC처럼 만들고 있다.

◇회사소개

법인명 : 옴론

설립일 : 1933년 5월

대표이사 : 사쿠다 히사오(作田久男)

매출 : 3362억7100만엔(2005년 3월 기준)

직원 수 : 4754명(2005년 3월 기준)

주요 제품 : 스위치, 커넥터, FA시스템 등

◆실력주의 인사

교토 기업의 인사제도는 실력주의에 기반을 두고 있다. 교토 기업의 대부분이 대기업 수준으로 규모가 커졌지만 아직도 창업 초기의 실력주의 인사 원칙은 그대로 지켜지고 있다. 능력있는 직원에게 승진 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기본이고 파격적인 각종 제도를 도입, 실력주의의 원칙을 깊게 뿌리내리고 있다.

로옴은 매년 1월 교토 시내 대형 호텔에서 우수 사원 시상식을 연다. 이 행사는 마치 아카데미 시상식처럼 화려함을 자랑한다. 최고 우수 사원에게는 사장상으로 현금 1000만엔을 준다. 물론 회사에 큰 이익을 가져다 준 개발이나 제안을 한 사원에게도 현금을 준다. 보통 한 번의 행사에 2억엔 이상의 현금이 뿌려진다.

옴론도 현금 보상 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과거 옴론은 팀 단위로 인센티브 성격의 현금을 지급했지만 96년부터 개인으로 시상 범위를 확대했다. 특허를 받는 기술을 개발한 주역에게는 최고 1억엔의 보너스를 지급하는 규정도 만들었다. 도세는 사원의 성과를 금액으로 환산, 그에 해당하는 주식을 주고 있다.

로옴은 연공서열 폐지와 관리직 연봉제를 30년 전부터 시행했다. 무라타제작소는 같은 과장이라도 상여금 차이가 2배 이상 차이나기도 한다. 무라타제작소는 자회사라도 능력에 따라 언제든지 본사의 임원으로 임명한다.

인수합병을 많이 한 일본전산은 신입사원 모두를 해외에 파견한다. 신입사원의 적응도에 따라 20대의 나이에도 해외 자회사의 관리자 역할을 맡긴다. 그 가운데 능력이 탁월한 직원은 30대 초반에도 본사 부장으로 발탁하기도 한다.

교토 기업은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국내 모 이동통신 광고 카피를 그대로 인사제도에 적용한 사례다. 유능한 사원은 좋은 평가를 받은 후 높은 보수와 승진 기회를 잡는 선순환 구조를 갖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