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10년’을 떨치고 본격 성장 궤도에 진입할 것으로 기대되던 일본 하이테크업계가 주춤하고 있다.
최근 잇따라 발표된 일본 하이테크업계의 상반기 경영실적 발표를 보면 대다수 기업들의 매출과 이익이 크게 줄어들었다.
이는 지난 해 하반기 이후 본격화된 △각 기업의 공격적 설비투자 △부품 및 디지털 제품 가격 하락 등의 거센 바람을 견디지 못하고 스러진 것으로 분석된다.
LCD 왕국으로 불리는 샤프조차 순이익이 감소했고 NEC일렉트로닉스는 CEO가 실적 악화를 이유로 경질되기까지 했다. 일 기업들의 부진은 특히 반도체, 디지털 가전, 전자부품 등 IT경기를 지탱하는 핵심 사업 분야에서 두드러져 향후 경기 전망마저 어둡게 하고 있다.
<>전자·전자부품업계, 실적 ‘추풍낙엽’=일 전자업체 중 가장 경쟁력을 갖춘 기업으로 지목되는 샤프도 상반기에 재미를 못봤다.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6% 증가한 1조3355억엔으로 역대 최고치를 보였지만 이익은 750억엔으로 오히려 3% 줄었다. LCD TV 매출이 1846억엔으로 전년 대비 40%나 급증했지만 전자 부품 부진의 영향으로 희석됐다.
NEC는 상황이 더 좋지 않다. NEC그룹 상반기 영업이익은 전년동기 대비 78% 감소한 130억엔이었고 자회사인 NEC일렉트로닉스는 무려 330억엔의 적자를 기록했다. 지난 해 상반기 331억엔 흑자와 비교할때 대폭의 실적 악화다. 이에 CEO는 이같은 경영 책임을 짓고 26일 전격 사임했다.
지난 주 가장 먼저 실적을 발표한 파이오니어는 상반기 240억엔의 적자를 냈다. 연초 10억엔 흑자를 기대했지만 결과는 처참했다. PDP TV와 DVD리코더 부문 적자가 특히 심했다.
일본빅터(JVC)은 지난해 상반기 70억엔 흑자에서 115억엔 적자로 돌아섰다. 세이코엡손도 전년도 394억엔 흑자에서 올 상반기에는 11억엔 적자를 기록했다. 대표적 전자부품업체인 태양유전은 순이익이 90% 감소했다.
<>원인=디지털 가전기기의 가격 하락이 직접 원인으로 지목된다. 지난 해 말 대비 평판TV 가격은 30%나 떨어졌다. 패널 가격도 20∼30% 떨어진 상태다. 이에 업계에서는 ‘수익을 낼 수 없는 구조로 경기가 흐르고 있다’고 울상이다.
반도체 가격 급락도 한 몫을 했다. 디지털 가전 및 휴대폰용 반도체를 중심으로 수요는 크게 늘었지만 단가는 날로 떨어지고 있다.가격 하락세의 진정에도 불구하고 당분간 상승은 힘들 것이라는 전망이다.
지난 해 이후 각 기업들의 공격적인 설비투자도 실적 악화로 이어졌다. 일 전자업체의 올 설비 투자는 전년 대비 20% 늘어났다. 결국 제품 가격이 하락해 채산성이 나빠졌고 수요 확대에 대비한 생산설비 확충에 뭉칫 돈을 쓴 것이 올 상반기 실적 악화를 야기한 것으로 분석된다.
<>향후 전망=일단 디지털 가전·부품·반도체 등의 가격 하락이 진정되고 있다는 점에서 하반기에는 어느 정도의 실적 호전이 예상된다. 그러나 올 들어 공격적으로 늘린 설비투자비·연구개발비 등이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연초 실적 전망치도 대대적인 수정이 요구된다. 이미 파이오니어, 엘피다메모리, NEC, 산요전기, 소니 등이 2005 회계연도(2005.4∼2006.3) 실적 전망을 하향 조정해 발표했다.
명승욱기자@전자신문, swm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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