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즘]시나리오

 허먼 칸은 앨빈 토플러보다 10년이나 빠른 지난 1960년대에 미래 예측으로 명성을 날린 인물이다. 그는 시나리오 기법을 활용해 비교적 가까운 미래에 대한 예측 정확도를 높였다. 실제로 68년에 ‘미래의 체험’이라는 저서를 통해 100가지를 예측했는데 이 중 95가지가 적중했다.

 현금자동지급기 보급과 비디오리코더(VCR) 등장, 위성항법장치(GPS) 활용, 초고속 열차 개통 등이 그가 맞힌 대표적인 사례다. 그러나 효과적인 체중조절기술로 누구나 원하는 몸무게를 가질 수 있거나 인간도 휴식과 치료 목적으로 겨울잠을 잔다, 모든 사람이 개인 비행기를 소유하게 된다는 예측은 빗나갔다.

 시나리오 기획의 대가 피터 슈워츠도 80년대 초에 이미 소련이 경제 붕괴로 공산주의 체제를 포기하게 되리라는 ‘소련 붕괴 시나리오’를 내놓았다. 당시 그의 시나리오는 정·재계 사람들로부터 허황된 이야기라고 평가받았지만 그가 시나리오 기획 입안자로 있던 로열더치셸은 그 시나리오를 채택했다. 그 결과 셸은 소련 붕괴에 대비하는 장기적 경영 전략을 수립했고 현재 글로벌 에너지 그룹으로 성장하게 됐다.

 1998년에 슈워츠는 이슬람 근본주의자에 의한 미국 주요 건물 폭발, 즉 9·11테러를 정확히 예측했다. 그는 국제 정황상 2000년이나 2001년에 뉴욕 또는 워싱턴의 상징적인 건물이 공격을 받을 것이라는 내용의 시나리오를 내놓았지만 미국 정부는 그 가능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의 예측은 2001년에 현실로 나타났고 결과적으로 이 사건은 시나리오 플래닝이 독보적인 미래 예측 기법으로 자리잡는 계기가 됐다.

 시나리오는 본래 영화 대본을 말한다. 1950년대 미국의 군사기관에서 일하던 칸이 수소폭탄 전쟁의 위력과 대처법을 군 지도자들과 정책결정자들에게 효과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고안했던 방법이다. 미래 예측에 쓰이는 시나리오는 결국 미래에 있을 법한 상황들에 대한 상상 속 얘기인 셈이다.

IT산업부·주상돈기자@전자신문, sdjo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