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투치 EMC 최고경영자(CEO)가 한국을 방문했다. 31일 롯데호텔에서 만난 조 투치 CEO는 “매우 바쁘다(very busy)”는 말로 인사말을 대신했다. 방문 일정도 짧을뿐더러 워낙 약속이 빡빡하게 짜여 있어 차 한 잔 할 정도의 여유도 없다고 엄살을 부렸다. 그는 이번 방문에서 삼성전자·삼성SDS 등 파트너뿐 아니라 주요 은행 등 고객사를 두루 방문한다.
조 투치 회장은 EMC의 ‘소방수’로 불리는 인물이다. 2000년 왕 글로벌 CEO에서 EMC로 옮긴 후 당시 매출과 수익 모두 고전을 면치 못했던 EMC를 위기에서 건져낸 ‘구원 투수’다. 그가 맡은 5년 남짓 EMC는 ‘9년 연속 두 자릿수 매출 성장’이라는 놀라운 기록을 세웠다.
그를 이야기할 때 항상 빠지지 않고 따라다니는 것이 ‘인수합병(M&A)’이다. 조 투치 회장은 2000년 이후 무려 15건의 합병을 진행했다. 매년 평균 3, 4개 기업을 흡수해 비즈니스 모델을 강화했다. 이날 인터뷰에서도 조 투치 회장은 여전히 M&A는 EMC가 성장할 수 있는 탄탄한 동력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EMC가 앞으로 벌어들일 수익과 관련해 집중할 분야를 두 가지로 언급했다. 하나는 자사 주를 매입해 주주의 로열티를 높이는 일이고, 또 하나는 M&A라고 딱 잘라 말했다. 제품 혹은 기술과 마케팅 투자를 기대했던 질문을 무색하게 했다.
스토리지 분야에서 독보적인 지위를 갖춘 EMC가 M&A에 목숨을 거는 이유는 간단하다. 한 마디로 시장과 고객의 요구가 변했기 때문이다. 시장에서 더는 시스템 경쟁력은 의미가 없다. 표준화가 이뤄지면서 사실상 ‘시장 가격’의 의미를 상실한 지 오래다. 오히려 소프트웨어나 서비스가 부가가치가 높은 사업으로 떠올랐다. 고객도 이제는 유형의 시스템보다는 무형의 애플리케이션에 더욱 비중을 두는 추세다. 여기에 날로 빨라지는 IT기술 발전을 단기간에 따라잡기 위해서는 기업 인수만큼 확실한 방법도 없다.
수많은 주주를 설득해 이를 과감하게 밀어붙이는 그의 안목과 추진력이 놀라울 뿐이다. 하지만 진짜 EMC의 경쟁력은 전세계 50개국에 진출한 글로벌 기업임에도 불구하고 불과 3∼4개월 만에 거대 기업의 M&A를 마무리짓는 빠른 의사 결정력이 아닐까.
컴퓨터산업부·강병준기자@전자신문, bjk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