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C 480년 그리스 살라미스 해협에서는 세계사의 큰 흐름을 바꿔놓은 해전이 벌어졌다. 전력의 절대 열세에 있던 그리스 함대가 페르시아 대군을 격파한 것이다. 이 살라미스 해전은 오랫동안 계속된 그리스-페르시아 전쟁에서 그리스가 승기를 잡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으며, 이후 그리스는 찬란한 세계사 문명의 중심지로서 전성기를 맞이하게 됐다.
나는 오늘날 급격히 변화하는 정보통신산업의 세계적 흐름과 우리나라의 현실을 보며, 우리 대한민국 IT산업이 중대한 기로에 서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이동통신 산업의 놀라운 발전과 세계 최고의 인터넷 보급률 등 지금까지의 눈부신 성장을 바탕으로 진정한 글로벌 IT리더로서 세계를 선도할 것인가, 아니면 서구 IT 선진국과 중국·인도 등 무섭게 성장하는 신흥 IT국가들 틈에서 2류 산업국가로 소리 없이 사라져 갈 것인가’하는 시점에 놓여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거대 제국의 침략이라는 위기를 극복해낸 그리스의 경험에서 우리 정보통신산업은 어떠한 통찰력을 얻을 수 있을까. 준비된 해군력, 지형의 적절한 활용, 정보전의 성공 등 많은 승리의 요인을 생각해 볼 수 있지만 내가 여기서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공동 생존을 위한 협력’이다. 이전까지 수많은 폴리스로 분열되어 있던 그리스는 모든 폴리스가 일치단결하여 페르시아군에 대항함으로써 귀중한 승리를 얻어낼 수 있었던 것이다.
먼저 아테네·스파르타 등 큰 규모의 폴리스를 중심으로 여러 군소 도시국가가 긴밀한 협력 체제를 구축한 것을 주목한다. 우리나라 정보통신산업은 지금까지 놀라운 성장의 신화를 일궈왔다. 그러나 이러한 정보통신산업 전반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산업의 성장에 함께 기여해 온 중소 IT업체들의 경영난이 여전히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더욱이 산업 내 양극화 문제가 더욱 가속되고 있으며 장기적으로 볼 때 IT산업 발전의 발목을 잡는 덫으로 되돌아올 우려가 있다.
따라서 정보통신 대기업은 협력업체와의 진정한 윈윈(win-win) 파트너십을 구축하고 경쟁력 강화를 지원하여 신규시장 및 해외시장을 동반창출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무조건적인 특혜 제공이나 이벤트성 지원이 아니라 대등한 파트너십을 바탕으로 지식 파트너, 기술 파트너로서 전략적 협력관계가 마련될 때 우리 정보통신산업의 경쟁력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이에 SK텔레콤도 ‘협력업체의 경쟁력이 곧 SK텔레콤의 경쟁력’이라는 신념으로 협력업체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중소 협력업체들과 상생(相生)경영에 나서고 있다.
그리스의 도시국가들이 보여준 또 다른 협력의 모습은, 당시 두 맹주 폴리스인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협력이다. 육상에서 페르시아군의 진격을 저지하기 위해 전멸을 감수하며 저항한 스파르타군이 없었다면 살라미스 해전의 승리도 장담할 수 없었을지 모른다.
정보통신산업의 성장이 둔화되고 시장이 포화되면서 메이저 플레이어들 간에 경쟁 격화 양상이 간혹 보이는 것이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건전한 경쟁을 통해 산업의 블루오션을 창출하는 것이 아니라 레드오션에서 소모적인 과열만 계속된다면, 그것은 결코 바람직한 모습이라 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SK텔레콤과 KT의 와이브로 공동망 구축 노력과 LG전자와 삼성전자 간 플래시메모리 반도체 공급 계약 등은 매우 고무적인 사례다. 이미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우리의 IT 대기업들이 새로운 성장 동력과 수익원 발굴을 위해 협력관계를 구축해 나간다면 국가적 산업경쟁력은 한 층 제고될 수 있을 것이다.
공존의 협력이 결국엔 자신의 이익으로 돌아온다는 진리를 우리 모두 역사로부터 배워야 할 시점이다. 대기업과 협력업체 그리고 경쟁사가 함께 ‘상생’의 길을 모색할 때 우리 모두 같이 발전하는 미래가 보장될 것이다. 대한민국 정보통신산업의 빛나는 오늘이 영원히 세계 IT산업사에 기록될 수 있도록, 우리 함께 ‘상생’의 노력을 시작할 때다. <조정남 SK텔레콤 대표이사 부회장
jnc@skteleco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