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혁명 이후의 급격한 과학기술 발전 속에서 가장 두드러진 분야를 꼽으라면 소프트웨어 산업을 빼놓을 수 없다.
무형의 자산이라는 재산권 혹은 저작권이라는 것에 대한 관심이 드러나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과거 유명 화가들의 작품이나 음악들이 소유권을 인정받고 고가에 거래된 점을 생각한다면 그리 복잡하고 납득하기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 단지 표현의 방식과 저장매체의 차이가 있을 뿐 분명 그것은 재산이며, 제품이기 때문이다.
며칠 전 불법복제 단속과 관련된 기사를 읽으면서 소프트웨어 정품사용이라는 단어를 접했을 때의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애플컴퓨터가 등장하고 IBM PC가 퍼지기 시작한 88올림픽 즈음 PC대리점에 5.25인치 디스켓만 들고 가면 얼마든지 복사해주던 시절이 기억난다. 그러나 어느 시기부터 대리점에서 복사가 금지됐고, 용산에서도 차츰 조립PC에다 프로그램을 무상으로 제공해주는 일이 어려워졌다. 그 당시에는 굉장히 불편하고 불만족스럽게 생각했던 일들이 지금 떠올려보면 부끄럽기만 하다. 그때만 하더라도 소프트웨어의 불법복제가 당연하게 받아들여졌고, 정품에 대한 인식부족이 낳은 잘못된 습관이 배어 있었던 것이다.
지금은 데브피아(Devipa)라는 개발자 커뮤니티를 대표하는 사람으로서 사석에서든 공석에서든 소프트웨어의 정품사용에 대한 얘기를 자주한다. 수년 전과 비교해보면 소프트웨어를 자산의 가치로 인식하는 수준과 불법복제의 위험에 대해서는 상당한 의식변화가 있었다는 걸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과거 와레즈나 FTP를 통해서 공유되었던 프로그램들이 한층 더 업그레이드되어 아직도 웹 디스크 등의 대용량 서비스를 통해서 매우 쉽게 공유된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점이 아닐까 싶다.
사무용소프트웨어연합(BSA)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04년도 우리나라의 소프트웨어 불법복제율은 46%로 2003년도에 비해 2% 감소했으나 피해액 측면에서는 전년도 4억6000만달러에서 4000만달러 증가한 5억달러다. 복제율은 약간 감소했으나 피해액 증가 면에서는 아직도 불법복제가 완화되지 않았다는 것을 볼 수 있다.
46%라는 수치는 과거에 비해서는 감소한 것이지만, BSA 기준 세계평균인 35%에 비하면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소프트웨어 개발 기술력이나 여러 인터넷 산업 등에서 세계적인 권위를 자랑하는 우리나라지만 이렇듯 불법복제로 인해 그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 이런 악순환은 세계 최강의 기술력을 자랑하면서도 국내 소프트웨어 분야를 가장 열악한 산업으로 전락시키며, 금융권에서는 소프트웨어 개발 기업이 문전박대 당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당연한 가치를 부여받기 전에 너무 쉽게 복제돼 수많은 소프트웨어 개발 기업이 제대로 수출 한번 못 해보고 문을 닫는 경우가 허다하다. 소프트웨어 개발 업종이 21세기가 잉태한 최고의 3D 업종으로 분류되고 있다. 수많은 고급 인력이 자신의 실력을 제대로 펼쳐보지도 못하고, 불합리한 현실 때문에 다른 일을 찾아 떠난다는 것은 국가 경쟁력에 상당한 치명타임에 틀림없다.
우리나라는 자원도 부족하고, 땅도 좁고,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다. 반면 세계가 인정한 소프트웨어 기술력과 수많은 고급 인적자원 등의 무한한 잠재력을 갖춘 나라다. 불법복제로 인해 어려운 현실을 헤쳐나가는 소프트웨어 산업의 발전을 위해서 이제는 범국민적인 차원에서 모두 한마음으로 지적재산권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꾀해야 할 것이다. BSA의 보고 자료에 따르면 국내 불법복제율이 10% 낮춰질 경우 3조2000억원에 이르는 GDP 증가 효과가 기대되며 수많은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고 한다. 정품 사용의 작은 실천이 국가 경제에 미치는 파급 효과는 분명하다.
◆홍영준 데브피아 대표 ceo@devpi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