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즘]하드디스크는 지금

 “하드디스크 시대가 점차 끝나고 플래시메모리 시대가 곧 올 것이다.”

 황창규 삼성전자 반도체 총괄사장은 얼마 전 서울에서 열린 ‘애널리스트 데이’에서 하드디스크 종말을 예언했다. MP3플레이어·휴대폰·디지털카메라·노트북PC 등 휴대형 정보기기 시장이 확대되면서 안정성이 뛰어나고 가벼운 플래시메모리 수요가 폭발할 것이라는 게 그의 예측이었다. 세계 반도체의 큰손 황 사장의 말은 곧 ‘황의 법칙’이기도 하다. 하드디스크는 PC시대의 대표적 저장장치였다. 하드디스크 종말은 곧 PC시대 종말을 예고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세계적인 하드디스크 제조업체 시케이트의 CEO 빌 왓킨스는 황 사장의 생각과 다르다. 그는 황 사장의 ‘플래시 러시 시대 (Flash Rush Era)’에 대해 ‘지나친 확대해석’이라며 “플래시메모리 수요가 크게 늘겠지만, 하드디스크와 상당 부문 공존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위기론에는 공감하지만 하드디스크의 생명력도 만만찮음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위기에 몰린 하드디스크는 요즘 다른 길을 찾고 있다. 다름 아닌 정보가전 시장이다. 하드디스크는 TV와 셋톱박스 등에서 새로운 저장장치로서의 위상을 확보하고 있다. LG전자의 50인치 PDP TV 타임머신에는 160GB의 하드디스크가 내장됐다. 방송내용을 최대 63시간까지 녹화할 수 있고, VCR나 DVD리코더 같은 녹화장비가 없어도 저장할 수 있다. 국내외 업체들이 만드는 셋톱박스에도 이와 비슷한 용량의 하드디스크가 들어가고 있다.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미국과 유럽, 일본 등지에서 셋톱박스 수요가 늘고 있다. ‘컨버전스’로 인해 휴대형 정보가전기기가 크게 늘어난만큼 가정과 사무실에서 고정형으로 사용되는 가전기기 수요도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품질의 오디오와 비디오를 재생하는, 이른바 비디오 스트리밍 분야에서 하드디스크는 여전히 강자다.

 하드디스크와 플래시메모리는 얼마 동안 공존할 것인가. 결론을 내리기 쉽지 않다. 하드디스크 진영 역시 ‘플래시 러시’에 대비, 다양한 방편을 모색하고 있다. 이들의 일차 목표는 정보가전 시장이다. 80, 90년대 디지털 시대를 이끌어 온 하드디스크. 그 운명은 PC업계가 아니라 정보가전업계에 달려 있다.

 김상룡기자@전자신문, sr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