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경제가 지금과 같은 성장궤도에 진입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인가.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경제 전문가들은 ‘수출’과 ‘외국인 투자’를 꼽는다. 대외지향적 발전모델을 추구하는 우리에게 수출은 활로다. 지난 수년간 내수침체 속에서도 수출은 우리 경제의 버팀목이었고 성장의 불씨를 살렸다. 외국인 투자는 이런 수출 능력을 배양하기 위한 기본 요소였다. 선진 첨단기술을 흡수할 수 있는 기회를 얻어 새로운 산업 창출은 물론이고 산업경쟁력을 제고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외국인 투자 유치 노력은 매우 적극적이다. 권태신 재정경제부 제2차관이 부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에서 공개적으로 “한국은 외국인 투자 없이는 살아남을 수 없다”고 말했을 정도다. 그렇다고 우리나라만 외국인 투자 유치에 나서는 것은 아니다. 미국·중국 같은 강대국부터 아일랜드·싱가포르 같은 작은 나라까지 세계 모든 나라가 외국인 투자 유치에 혈안이 돼 있다. 이번 APEC 회의에서 각국 정상이 직접 나서서 불꽃 튀는 투자 유치전을 벌인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국가 간 경제장벽이 허물어지고 기업의 활동 영역이 전세계로 확대되는 추세다. 때문에 국내외 기업을 따지는 것은 별 의미가 없어졌으며, 각 나라는 가급적 많은 외국기업을 유치해 국가경제 발전에 기여하기를 원한다. 이런 상황에서 서로 외국기업을 자국으로 끌어들이려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다면 우리가 외자를 경쟁국보다 더 많이 유치할 수 있는 방책은 무엇인가. 당연히 우리나라를 매력적인 투자처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 세계 유력 기업 CEO에게 비친 우리 투자 환경은 어떤가. 한마디로 그렇지 못하다는 게 문제다. 이번 APEC에 참가한 외국 CEO들은 “한국이 정보기술(IT)이나 생명공학 분야에서 매력적인 투자처”라며 치켜세우면서도 한편으로 “정부와 시민단체 등의 시장 개입으로 한국에 투자할지, 투자를 얼마나 더 확대할지에 대한 의사결정이 어려운 경우가 적지 않다”고 털어놨다. 우리나라에 대한 투자를 망설이게 된다는 대목에서는 등에 식은땀이 날 정도다.
외국 CEO들의 입에서 아직 우리 사회가 국제화가 덜 되고 정부의 규제로 인해, 또 시민단체의 간섭 때문에 투자가 어렵다는 소리가 나오는 것은 정말 민망한 노릇이다. 무엇보다 정부의 규제와 간섭보다 자본주의의 핵심가치인 우리의 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에 대해 의구심을 갖고 있는 듯한 일부 외국 CEO의 지적은 우려스럽기 짝이 없다. 노사정책이 투명하지 못하고 시장원리가 작동되지 않는다는 지적들이 바로 그렇다.
정부는 외국인들이 투자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겠다고 하면서 왜 이런 불만의 소리가 나오는지, 왜 투자 불안 요소가 많은지 꼼꼼히 파악하고 반성해야 한다. 외국인의 처지에서 모든 규제 내용을 엄밀하게 따져보고 개선해 신뢰를 얻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우리가 원하든 원치 않든 세계는 지금 거대한 ‘글로벌 오션(지구촌 바다)’으로 나아가고 있다. 글로벌 오션에서 ‘우물 안 개구리’는 생존하기 어렵다. APEC 참가자들이 우리에게 던진 쓴소리들은 여전히 남아 있는 ‘우물 안 개구리 모습’에 대한 충고일 것이다. 각종 정책에 대한 시민단체와 국회·정부의 지나친 간섭, 외국인 투자에 대한 숱한 규제, 미진한 지적재산권 보호…. 우리가 적어도 최적의 환경을 가진 천혜의 투자처를 훼손하는 우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는 하나같이 귀담아 들어야 할 말들이다.
◆윤원창 수석논설위원 wcyoo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