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가 ‘개혁’과 ‘화합’을 놓고 저울질하다 ‘화합’을 택했다. 엊그제 단행된 2006년도 임원 인사에서다. 승진폭이 근래 보기 드물게 컸다. 초보 임원(상무보) 승진은 예년의 절반이었지만 부사장 승진은 한꺼번에 4명이나 나왔다. 전무와 상무 승진도 9명, 7명이나 됐다.
지난해 이맘때 인사에서 승진은 초보임원만 18명이었고 전보가 15명이었다. 이를 두고 주요 매체가 ‘대규모 인사’니 ‘대거 승진’이라 했으니 올해 인사는 가히 ‘매머드’급인 셈이다. 취임 갓 100일을 맞은 남중수 사장의 사실상 첫 경영 작품은 이렇게 골격이 잡혔다. 작품 배경으로는 ‘조직의 화합과 조기 안정화’라는 설명이 따랐다.
그렇다면 도대체 KT에 무슨 고민이 있을까. 신임 사장의 첫 인사 주제가 ‘화합’이며 ‘안정’이었으면 그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KT의 고민은 아무래도 2002년 민영화 이후 신사업 발굴에 더는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큰 기대를 모았던 통·방 융합 추진과 와이브로 활성화는 이제 KT만의 노력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닌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불공정 시비에 휘말린 PCS재판매 문제 등은 앞으로도 규제장벽의 파고가 더욱 높아질 것임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통신인프라의 잠재적 역량을 발현시켜 줄 콘텐츠 부문의 강화 전략도 절체절명의 과제다.
비정하겠지만 이런 현실이 고스란히 반영되는 게 경영 성과다. KT는 올 상반기 4대 성장성 증가율에서 자기자본 부문만 간신히 플러스를 기록했을 뿐이다. 매출·영업이익·총자산 등 나머지 부문에서는 모두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영업이익 부문의 마이너스 폭은 30%에 육박할을 정도다. 심각한 것은 이런 추세가 하반기나 내년에도 별반 달라질 기미가 안 보인다는 사실이다. 오죽하면 벌써부터 내년 이익감소분이 2000억∼3000억원에 이를 것이란 예상이 나올까.
SK텔레콤과 비교해 보면 KT의 현실은 더 적나라해진다. 영업이익에서 KT는 2001년 이후 한 번도 SK텔레콤을 넘어서지 못했다. 5년 전만 해도 SK텔레콤의 매출은 KT의 절반 수준이어서 언론에서도 두 회사를 두고 ‘통신 양강’이라는 표현을 감히 쓰지 못했다. 그런데 올 상반기엔 KT의 턱밑인 83%대까지 치고 올라왔다. 평균 매출 증가율도 KT가 2%대에서 헤매는 사이 SK텔레콤은 12%대에서 고공비행했다. 특단의 대책이 마련되지 않으면 1∼2년 내에 매출액 1위 자리마저 SK텔레콤에 내주게 된다는 얘기다. 민영화 2기를 맞은 KT의 고민이 바로 여기에 있다.
남중수 사장은 결과적으로 이 고민에 대한 해결 실마리를 화합에서 찾아낸 모양이다. 화합을 통해 실마리를 푼 다음 자신이 주창해온 ‘원더 경영’을 실현해 나가겠다는 뜻이다. 원더경영은 ‘새로운 눈으로 세상을 바라봄으로써 고객에게 놀라움과 감동을 주자’라는 뜻이라고 한다.
이번 인사를 ‘시니컬’하게 보자는 뜻이 아니다. 화합은 열등하고 개혁은 우등하다는 식의 이분법적 논리를 말하려는 것도 아니다. 현실인식이나 방법의 차이가 있을 뿐 화합을 통해서든 개혁을 통해서든 최고경영자가 추구하는 최종 목표는 같기 마련이다. 어찌 보면 이번 인사에서 남 사장은 개혁을 기대했던 많은 이에게 되레 화합의 메시지를 던져줌으로써 놀라움을 주는 데까지는 일단 성공한 셈이다.
최고경영자에게 인사는 의사결정 과정의 최고 단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과해서는 안 될 사실이 하나 있다. 인사는 경영의 본질이라기보다는 최고경영자 스타일의 문제라는 점이다. 남 사장이 내세운 원더경영이라는 것도 그의 스타일을 대변하고 있을 뿐이다. 이번 인사가 KT에 대한 고객들의 감동으로 이어질지는 이제부터 단단히 지켜볼 일이다.
◆서현진 IT산업부장 jsuh@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