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우석 교수의 연구에서 간과했던 윤리적인 문제와 MBC PD수첩 프로그램의 지나친 욕망을 보면서 연구자와 언론 기자는 서로 상대방을 너무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개인적으로 겪었던 언론에 대한 두 가지 다른 기억이 있다.
첫 번째는 약 15년 전의 일이다. 내가 책임을 지고 있던 연구실에서 자체 개발한 레이더로 휴전선 땅굴을 찾게 되어 기자회견을 연 적이 있다. 당시 나에게는 이것이 큰 걱정거리였다. 기자들에게 연구진이 수행한 역할을 이해시키기 위해서는 핵심 연구장비에 대한 기술적인 내용을 설명하고 실제 땅굴을 찾았던 현장 측정 데이터도 제공해야 할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는 한편으로 국가 기밀사항일 수도 있어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했던 것이다. 고민 끝에 기자들에게 이 같은 어려움을 설명하고, 기밀사항은 스스로 판단하여 지켜줄 것을 간곡히 부탁했다. 물론 모든 언론이 이를 사회면 톱기사로 다루면서도 기술적인 기밀사항은 전혀 드러나지 않도록 보도했다. 나는 아직까지도 당시 언론의 배려에 감사하고 있다.
두 번째는 한때 북한이 판 땅굴이 서울시까지 들어와 있다고 모 유력 월간지와 방송사가 보도한 일이다. 국민의 애국심과 종교계 등의 후원을 얻어 땅굴을 찾겠다는 어느 군 출신이 제보한 터무니 없는 내용을 근거로 하고 있었다. 북한에서 한강을 넘어 김포까지 뚫은 땅굴에서 시멘트 등 인공구축물이 나왔으며, 갱차와 곡괭이로 작업하고 있는 소리와 북한 군인들의 목소리까지 녹음했다는 주장이었다. 심지어는 이에 동조하는 전문가 의견까지 곁들여졌다. 오보였음은 물론이다. 아마도 해당 월간지 편집장과 방송사의 PD가 조작된 과학적 데이터에 속았던가, 아니면 특종을 하겠다는 욕심이 지나쳐 발생한 실수였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 이 잘못된 보도는 동료 교수들도 진위 여부를 물어올 정도로 국민에게 사실적으로 다가가 큰 불안감을 주었다. 더욱이 이들 월간지와 방송사는 땅굴탐사를 맡고 있었던 군이나 전문가들은 의도적으로 외면하는 잘못까지 범했다.
과학기술계 연구자들은 실패의 연속선상에서 살고 있다. 광주과기원이 새로운 재료(징크 옥사이드)를 사용해 원자외선(UV) 광을 발광하는 반도체 LED를 개발하는 과정을 예로 들어보자. 1년여에 걸쳐 수천개의 LED를 만들지만 이 가운데 연구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시료 LED는 겨우 20여개뿐이라고 한다. 90% 이상은 실패하는 셈이다. 이전에 만들었던 LED는 왜 발광하지 못하였는지 이유를 분석하고, 새로 만든 P형 LED가 발광하는 파장과 원리에 대한 이론을 계산으로 받쳐주며, 측정한 결과를 정리해서 국제적으로 권위 있는 학술지에 제출한다. 학술지 편집장은 여러 국제적 전문가에게 이 연구에 대한 평가를 위촉하고 전문가들은 이 논문의 가치를, 특히 독창성을 중심으로 평가하고 의심스러운 점들을 일일이 지적하여 편집장에게 보낸다. 독창성이 모자라는 논문은 출판이 거부된다. 의심스러운 지적사항은 원저자에게 질문이 되고 원저자의 해답에 대해 평가 전문가들의 과반수가 인정할 때만 이 논문은 학술지에 실리게 된다. 그 후에도 비슷한 연구를 하는 연구자들이 그 논문보다 좋은 결과를 내어 그 논문의 주장이나 실험이 잘못됐다고 발표할 수도 있을 것이다.
교수와 대학원 학생과 연구자들은 기대했던 결과가 나오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항상 겸손한 마음으로 실패의 원인을 찾아 고치고 또 고치며, 더 좋고 쓸 만한 시험 시료를 만들고 있다. 완전하지는 않지만 가능성을 보이는 중간 결과라도 서둘러 발표하게 되고, 평가를 받고, 조금이라도 새로운 가능성이 있다면 과감하게 시도해 가는 것이다.
이처럼 과학기술자는 수많은 실패와 함께 생활할 수밖에 없다. 또 이와 같은 실패로부터 배우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 과학기술자이기도 하다. 따라서 과학기술자들이 언론을 접할 때 갖는 어려움에 대해서 이해를 구하는 노력과 더불어 언론의 비판을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는 지혜도 필요한 것이다. 상호 이해와 협력, 건전한 견제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나정웅 광주과학기술원장 president@gist.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