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포럼]벤처와 토정비결](https://img.etnews.com/photonews/0601/060105020837b.jpg)
흰눈을 대동하고 병술년(丙戌年) 개띠해가 밝아 왔다. 자고로 개는 영물로 우리 인간과 가장 가까운 동물이다. 윤회설에서 개는 전생에는 사람이었으며, 팔자 좋은 사람을 개에 비유하기도 한다. 또 개는 허약한 자들이 즐겨 찾는 스태미나의 원천이기도 하다. 띠로 볼 때 올해는 벤처업계에 12년 만에 찾아오는 호기임이 틀림없으며 이는 토정비결에도 적혀 있는 대목이다.
정초가 되면 한 해 운수를 점치는 세시풍속이 400여년간 이어져온 언저리에는 토정비결이 있다. 토정비결은 토정 이지함 선생의 작품으로 새해가 되면 우리나라 사람들을 이 책 안으로 끌어들이는 힘을 가지고 있다. 이지함 선생은 우리나라 최초로 자본주의 경제를 주창한 경제학자 겸 수학자, 지리와 천문에 밝은 과학자 그리고 빈민 운동가로 알려져 있다. 토정비결은 ‘사즉생 생즉사(死卽生 生卽死)’로 시작한다. 벤처 기업가에게 던지는 명언처럼 들린다.
손자병법에 쓰인 문구도 눈길을 끈다. ‘유능한 장수는 전쟁터에서 땀을 흘리지 않는다. 정말 잘 싸우는 장수는 쉽게 이길 수 있는 적을 상대하여 싸워 이긴다(訴謂善戰者, 勝于易勝者也).’ 여기서 쉽게 이길 수 있는 적이란 약한 상대가 아니라 철저한 준비로 쉽게 적을 제압할 수 있는 전략을 갖추고 전투에 임한다는 뜻이라고 한다. 토정비결에서는 비올 날을 대비해 미리미리 준비하면 부귀영화는 떼논 당상이라 했다.
유비가 제갈공명을 얻기 위해 세 번째로 그의 집을 찾아갔을 때의 일이다. 거문고를 타고 있는 제갈량의 모습을 보기 위해 정원 은행나무 뒤에 몸을 숨긴 채 초당 안을 바라보고 있는 유비의 모습은 도둑질하려는 도둑 같기도 하고 흠모하는 동네 총각을 훔쳐보는 수줍은 처녀 같기도 했다. 삼고초려(三顧草廬)의 종결편에 나오는 이야기다. 토정비결에서는 찍고 또 찍으면 십 년 묵은 원이 풀린다고 했다.
햄릿 3막 1장에 나오는 ‘사느냐 죽느냐, 이것이 문제로다’는 널리 알려진 대사다. 가혹한 운명의 화살이 꽂힌 고통을 참는 것이 과연 장한 일인가. 아니면 두 손으로 거친 파도처럼 밀려드는 재앙과 싸워 이를 물리치는 게 옳은 일인가. 동짓달에 위태로운 일이 보이는데 목숨 걸고 막으면 눈 녹듯이 사라진다 했다.
스티브 도나휴가 사하라 사막을 종단한 경험을 토대로 쓴 ‘사막을 건너는 여섯 가지 방법’ 중 세 번째가 모래에 갇히면 타이어 바람을 빼라는 것이다. 타이어 공기를 빼고 차의 높이를 낮추면 차가 모래 위로 올라설 수 있으며, 사람도 자아에서 공기를 빼면 굉장한 자기 상승을 맛볼 수 있다고 했다. 성공으로 가는 길목에서 만난 사막에 잡힌 발목을 풀기 위해서는 자아에 차 있는 바람을 빼고 자신의 참모습을 보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토정비결에서는 허파에 바람을 빼지 않으면 강풍에 날려 갈 손괘가 보인다고 적혀 있다.
우리나라 대표급 벤처 CEO 안철수는 ‘영혼이 있는 승부’에서 벤처 CEO는 회사 규모에 관계없이 기업가 정신을 지켜야 한다고 힘주어 쓰고 있다. 기업가 정신을 지킨다면 건전한 기업활동으로 철저히 영업이익을 내는 것에 충실하게 된다고 한다. 토정비결에서도 정성을 다하면 동쪽에서 귀인이 나와 도와준다 했다.
조 지라드는 ‘사람을 움직이는 대화의 기술’에서 사람을 움직이는 처세술은 듣는 것에서 출발한다고 밝히고 있다. 상대를 만족시켜 줄 구체적인 듣기 방법은 다음과 같다. 첫째, 열심히 듣는다. 둘째, 물으면서 듣는다. 셋째, 분명하지 못한 점을 확인하면서 듣는다. 넷째, 상대가 원하는 것을 생각하면서 듣는다.
이와 맥이 같은 훈수로 데브라 벤턴은 ‘CEO처럼 행동하는 방법’에서 CEO는 CLO(Chief Listening Officer)라고 했고, 토정비결에서는 이웃의 말을 귀담아 들으면 천 냥 재물을 얻는다 했다.
벤처업계는 12년 만에 돌아온 호기를 맞아 이 같은 문구들을 다시 한번 되새기며 2006년을 ‘제2의 벤처 붐’의 해로 만들어 가길 진심으로 바란다.
◆오해석 경원대 부총장 oh@kyungwon.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