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화 초기인 1883년에 우리나라 최초의 표준기관이 세워졌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현재 기술표준원의 모태가 된 전환국 소속 분석시험소가 설립된 것은 1883년 8월 7일(고종 20년)이다. 당시 분석시험소의 주요 업무는 화폐 주조 및 금속광물의 분석, 제련, 가공이었다. 이후 일제 치하에서 조선총독부 공업전습소로 개칭됐으며 1912년 공업전습소는 중앙시험소에 소속됐다. 1915년에 공업전습소는 경성공업전문학교로 이관됐으며 해방을 맞은 1945년에는 전시실이 미군정에 접수되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다. 우리나라의 근대사가 소용돌이 속에 있었던 만큼 표준기관 역시 역사와 함께 수없이 소속 변경을 거듭했다.
기술표준원의 역사를 말하자는 것이 아니다. 농업을 제외하곤 산업의 근간이라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던 시절부터 표준의 중요성이 인식돼 왔다는 사실에 놀랄 뿐이다. 비록 화폐 주조와 가장 기초적인 금속의 분석, 제련에 머물렀지만 표준을 정하기 위한 근대적 기관이 설립됐다는 것에 새삼 표준의 중요성을 실감하게 된다. 가장 근대적 기관이라고 여겼던 우정총국(1884년)보다 1년이나 앞서 설립됐다. 120여년 전 표준기관이 설립돼 우리나라 공업근대화를 이끌었다. 한때는 일제치하, 미군정에 귀속되기도 했지만 유구한 역사를 한결같이 지켜와 지금의 기술표준원이 됐다. 6·25전쟁 직후 세계 최빈국의 오명을 안을 때도, 이데올로기 대립이 첨예할 때에도 표준기관은 존재해 왔다. 뿌리를 따지자면 현재 어떤 기관과 겨루어도 뒤질 게 없다.
하지만 역사가 명성과 일치하지는 않는다. 또 역할과도 일치하지 않는다. 시대와 상황에 따라 산업의 우선순위가 바뀌고 중요도도 변한다. 70년대 국립공업표준시험소로 국가 공업표준을 주도했지만 현재의 위치는 역사를 앞세울 만한 처지가 아니다. 유구한 역사만큼 우리나라가 주도한 세계표준이 얼마만큼인지에 대해선 더욱 할 말이 없다.
세계 각국은 ‘표준전쟁’이라 불릴 만큼 치열한 선점경쟁을 벌이고 있다. 국내에 한정된 표준은 더 는 표준일 수 없다. 세계가 인정하고 따르는 표준이 진짜다. 우리나라는 1883년 표준기관을 설립했다. 그때의 초심으로 표준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한다면 우리나라는 분명 표준 선진국이 될 것이다.
디지털산업부·이경우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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