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병술년도 벌써 보름을 훌쩍 넘겼다. 매체 가운데 가장 늦게 디지털 전환을 시작한 케이블TV는 올 한 해 갈 길이 바쁘기만 하다. 지난해 디지털 케이블TV 가입자 유치는 5만여 가구에 그쳤고 설상가상으로 범SO 연합의 KCT가 정보통신부에 제출한 기간통신망 사업자 면허신청이 뚜렷한 명분 없이 보류 판정을 받아 케이블을 통한 트리플플레이서비스(TPS)는 발목이 잡힌 상태다.
정통부가 내세운 보류 이유는 교차진입이 허용되지 않은 상태에서 방송사업자의 통신 진입은 통신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것이다. 그러나 통신사업자의 방송 진출은 이미 KT의 스카이라이프나 SK텔레콤의 티유미디어 등으로 진출이 완료됐다.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케이블TV의 VoIP서비스와 통신업계의 IPTV 교차 허용을 위한 포석이 아니겠느냐는 관측마저 나오고 있다. 이는 중립적 시각에서 정책을 입안해야 할 기관이 사업자 일방의 처지만 대변하는 것이란 의혹을 사기에 충분하다.
신년 초부터 케이블TV업계를 둘러싼 주변 환경은 어느 것 하나 명쾌하지 못하다. 방송·통신 융합서비스를 위한 갖가지 법안은 국회 상정을 코앞에 두고도 안개 정국이다. 문제의 키를 쥐고 해결해야 할 관련 부처 간 논의 역시 평행선으로만 계속 치닫고 있다.
케이블TV의 가장 강력한 경쟁 대상이 될 IPTV가 어떤 형태로 규정지어질지 모르는 상태에서 통신시장에 이제 막 진입한 케이블사업자에는 갖가지 의무만 줄줄이 기다리고 있다. 거대 통신사업자의 전주 관로 등 필수 기반 설비를 이용한 케이블TV업계의 통신시장 내에서의 목줄 죄기는 강도를 더해 가지만 관계기관의 중재나 해결책을 기대하기는 요원하기만 하다.
현재 국회의 파행과 5·31 지방선거를 앞두고 방송·통신 융합 논의는 뒷전으로 밀려날 것이라는 추측도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뿐만 아니라 방송위원회는 3기 위원회 구성을 앞두고 있어 행정 공백마저 우려된다.
이 같은 상황은 HD 셋톱박스 보급의 호기가 될 6월 월드컵 개최를 목전에 두고도 케이블업계의 대대적인 마케팅을 막고 있으며, 올해 새롭게 선보일 연동형 데이터방송, t커머스 등 서비스 업그레이드를 위한 각종 투자비용 지출에도 부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은 케이블TV산업에 대한 재평가가 빠르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대기업군의 투자가 지속되고 있고, 국내외 투자자들 역시 미래가치가 높은 산업으로 케이블TV를 평가하고 있다. 특히 케이블TV는 우리 국민 대다수에게 다채널 방송의 보편적 서비스가 가능한 인프라를 구축했다는 점과 미디어환경 개선 등의 측면에서 사회적 책임투자(SRI)의 실현이 가능한 산업으로 인정받기 시작했으며 사업자들의 노력도 더해지고 있다.
지난해 케이블TV산업 10년을 조망한 각종 세미나에서 빠지지 않고 지적된 논의 중 하나가 케이블TV산업은 정책적 미비와 미봉책으로 오랫동안 정상궤도에 오르지 못했다는 것이다. 정치적 이해관계로 인한 파행과 긴장관계가 해소되지 못한 결과가 산업적 피해로 이어져서는 안 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케이블TV사업자는 물론이고 관련 산업 종사자들이 예측 불가능한 정책 속에서 정부 및 정책기관을 향해 불만을 토로하는 일이 더는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는 부처 간 이기주의를 극복하고 장기적이고 거시적인 안목에서의 정책 수립이 이뤄질 때 가능해질 것이다.
◆유재홍 한국케이블TV방송국협의회장 jhlew@lg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