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디스플레이 장비업계에도 초등학생, 중학생, 입시를 준비하는 고3이 있다.” 장비업계 한 관계자의 말이다. 이는 이미 초·중·고교를 마치고 입시공부를 하고 있는 장비업체가 정부 과제를 통해 기술을 발전시키려 해도 다시 ABC부터 공부해야 하는 상황임을 설명하기 위해 든 비유다.
사실 ‘고3 반도체·디스플레이 장비업체’에 대한 정부의 지원 정책은 빈약하다. 특히 반도체장비는 무려 15년 이상 산·관·학·연 차원의 기술개발 사업이 있었으나, 일각에서는 초등학생 정책만 계속돼 왔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결국 초등학생을 가르쳐 졸업시킨 뒤 중학교를 안 보내고 다시 초등학교에 입학시키는 꼴이라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이 이야기를 정부 공무원에게서 들었다고 했다. 결국 정부도 이 같은 문제를 알고는 있지만 공평성·일반성 등을 고려하다 보니 실효성 높은 정부 정책사업을 만드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산업 저변 확대도 중요하다. 하지만 균등 배분을 원칙으로 하는 정책 사업으로는 우수한 대학생(?)을 키울 수 없다. 물론 대학생이 되는 것은 그 기업의 몫이다. 하지만 정책 사업을 통해 우리 산업에 기여할 획기적인 성공모델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저변 확대와는 별도로 선택과 집중도 필요하다.
우리나라에 소자(패널) 산업 주도권을 빼앗긴 일본의 반도체·디스플레이업계가 핵심 부품·장비·특허 등을 무기로 국내 업계를 목죄기 시작했다. 부인하고 싶지만, 사실 아직 우리 대기업들조차도 일본이 쥐고 있는 기술 또는 핵심부품을 공급받지 않으면 막대한 타격을 받는 구조를 갖고 있다. 이 때문에 장비 등의 국산화를 추진할 때 일본 업계의 눈치를 살피면서 조용조용 진행하는 것이 현실이다.
‘소자(패널) 선진국, 장비·소재·부품 개도국’이라는 이야기를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다. 이제는 왜 우리가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어야만 하는지를 곱씹어 볼 때다. 다행히 최근 정부는 선택과 집중을 통해 ‘강소기업’을 육성하겠다는 의지를 지속적으로 표명했다. 선진 장비업체와 대적할 대학생(?)도 키우겠다는 것이다. 의무교육 지원만큼이나 대학 장학금 지원도 중요하다. 결국 고등교육을 받은 강소기업들이 자신은 물론이고 대기업 그리고 우리 경제 발전의 토대가 될 것으로 확신한다.
디지털산업부·심규호기자@전자신문, khs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