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시스템반도체(SoC) 업체들이 고속성장을 하는 등 두각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코아로직과 엠텍비젼이 주식시장에서 자본금의 100배에 가까운 가치를 인정받으며 성장가도를 달리고 있고, 리디스테크놀러지와 픽셀플러스는 나스닥에 상장되는 쾌거를 일궈냈다는 것이다. 또 티엘아이는 미국 칼라일그룹과 인텔캐피털로부터 700만달러의 투자를 유치했다고 한다. 이 밖에도 많은 업체가 LCD·DMB·와이브로 등 주력 또는 신성장동력 분야 산업 성장과 궤를 같이하며 급성장하고 있다. 국내 메모리산업의 성장과 함께 비약적인 발전이 기대된다는 점에서 고무적인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세계 SoC 시장이 매년 11% 이상 성장해 2010년에 약 780억달러 규모에 이를 정도로 유망하다는 점에서 국내업체들의 성장은 의미가 크다. 특히 SoC가 정보통신과 가전제품의 경쟁력을 좌우할 정도로 핵심부품으로 부각된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산업자원부가 최근 전경련과 공동으로 발표한 ‘2015 산업비전’을 통해 국내 반도체산업이 세계 2위로 자리매김할 것이라고 예측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라고 판단된다. 물론 국내 시스템반도체업체들이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정부가 지난해부터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삼아 육성과 지원에 적극 나선 것이 큰 힘이 됐을 것이라고 본다.
하지만 앞으로가 문제다. 국내 시스템반도체산업의 앞길이 평탄한 것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국내 시스템반도체산업은 칩 설계만을 하는 중소 팹리스업체들이 주도하고 있어 성장기반이 약하다. 시스템반도체산업이 도약하기 위해서는 가공공정인 파운드리가 반드시 필요하지만 국내에 파운드리가 많지 않은 실정이다. 이 때문에 중소 팹리스업체들은 대만과 중국의 파운드리에 의존할 수밖에 없고 이로 인해 경쟁력이 떨어지는 것이다. 확실한 가공생산 협력자가 없다 보니 납기일을 맞추는 것부터 쉽지 않을 뿐만 아니라 더 큰 문제는 가공된 칩의 품질유지와 설계기술 유출에 대한 불안을 떨쳐버리지 못한다는 점이다. 중국의 파운드리가 고도의 노하우가 축적된 설계도를 복제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이처럼 중소 팹리스 업체들에는 파운드리 건설이 절실하지만 메모리반도체에 못지 않게 많은 투자가 요구되는 장치산업이어서 결코 쉽지가 않다. 또 지속적인 설비 업그레이드가 이뤄져야 하는 것도 중소기업에는 부담 요인이다. 국내 기업들이 파운드리 투자에 미온적인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하지만 국내 시스템반도체 산업이 정상궤도에 올라서기 위해서는 지금 투자에 나서야 한다. 모처럼 잡은 투자 호기를 놓칠 경우 더욱 투자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컴퓨터용 칩으로 이미 세계적인 시스템반도체산업을 일군 대만은 국내 통신용 시스템반도체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파운드리를 무기로 국내에 디자인하우스까지 두고 시스템반도체업체들을 불러모으고 있다. 세계 최대 파운드리업체인 대만 TSMC는 최근 국내업계를 대상으로 최첨단 90나노 공정을 빌려주겠다며 마케팅을 시작했다.
이대로 가다가는 국내 시스템반도체산업이 대만의 거대 파운드리산업의 하부구조로 종속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나아가 시스템반도체를 장악한 대만과 중국의 협공에 국내 정보통신산업의 헤게모니마저 크게 약화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지금이라도 민·관이 손을 맞잡고 지혜를 모아야 한다. 정부와 반도체산업협회가 중심이 돼 시스템반도체산업의 불안거리인 파운드리 확보에 적극 나서줘야 한다. 금융지원 등 다각적인 방법으로 국내 투자자를 물색하거나 업계 공동 설립방안이라도 모색해야 한다. 해외업체들의 팹을 유치하거나 국내외 합작투자도 한 가지 방법일 것이다. 이도 저도 안 되면 삼성전자나 동부아남반도체의 파운드리를 좀더 확실하고 안정적으로 활용할수 있도록 하는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