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부산APEC 정상회의 기간에 우리나라는 휴대인터넷(와이브로)·지상파DMB·인공지능 로봇 등 ‘IT 코리아’의 이미지를 높이는 신기술을 잇달아 선보이며 세계 각국 정상과 기업인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특히 영상전화, 동영상 감상, 인터넷 정보검색 등 집 안에서 즐기는 초고속인터넷 환경을 시속 120km로 달리는 차 안에서 그대로 재연한 와이브로 시연회는 통신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오랫동안 논의되던 ‘모바일 초고속인터넷’ 서비스의 가능성을 눈으로 확인해 준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와이브로 시연회의 성공은 곧바로 일본·영국·미국·이탈리아 등 해외 통신사업자와의 장비 공급 계약으로 이어져 초고속인터넷·CDMA에 이어 IT 강국의 위상을 이어갈 차세대 아이템이 될 것이라는 기대에 부풀게 했다.
이러한 기대를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디지털 컨버전스’ 트렌드에 맞게 우리 IT산업의 체질을 강화해야 한다. 디지털 컨버전스 시대에는 인프라·기기 등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콘텐츠 분야에서 모두 국제 경쟁력을 갖출 수 있어야 IT강국의 위상을 지속시킬 수 있다. 그동안 우리 IT산업의 성공은 초고속인터넷의 조기 확산, 다양한 이동전화 부가서비스 개발과 그에 따른 관련 장비·단말기 등 하드웨어 측면에서 한발 앞섰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러나 CDMA전화는 부품의 43%를 수입에 의존하는 등 원천기술의 부족이라는 약점을 지니고 있다. 또 소프트웨어와 콘텐츠 분야가 상대적으로 취약하다.
또 다른 불안 요소로는 성장둔화와 함께 투자와 고용 측면에서 OECD 회원국 중 하위권을 형성하고 있다는 점이다. 2000년 이후 연평균 14%를 기록한 IT산업의 성장률은 2002년 이후 연평균 9.4%로 둔화되고 있다. 이는 IT산업의 성장과 투자를 이끌어온 통신산업의 침체가 하나의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성장을 이끌어온 초고속인터넷이 성숙기를 맞고 있음에 따라 새로운 서비스와 투자 기회를 찾아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KT 역시 와이브로·IPTV·u시티·홈네트워킹 등 소비자 욕구를 반영한 컨버전스 서비스에 투자와 활성화 노력을 해왔다. 그러나 이러한 신기술·신상품이 기존 규제 틀에 입각한 해석 문제로 서비스 출시가 지연되면서 성장, 투자 및 고용 창출, 소비자 편익, 글로벌 리더십 확보 등에서 많은 손실을 초래하고 있다. 와이브로는 유무선 역무 논쟁 등으로 정책결정에 무려 2년 6개월이 소요됐다. IPTV 역시 기존의 통신·방송 진입규제, 산업분류에 따른 주도권 다툼과 이기주의로 인한 서비스 지연으로 시범서비스조차 시작하지 못하고 있다.
다행히 와이브로 기술은 새로운 성장동력이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지상파DMB와 IPTV 기술 등 디지털 콘텐츠를 전달할 새로운 매체에서도 앞선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세계 주요 통신회사는 우리의 새로운 서비스에 대해 가능성을 인정하고 전략적 제휴를 원하고 있다. 이러한 가능성을 수출 확대와 서비스 세계화로 이어가기 위해서는 먼저 국내에서 성공적으로 정착되어야 한다. 다양하고 까다로운 소비자들의 검증을 거친 서비스와 제품만이 세계 무대에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것이다.
IT강국의 지속 가능성은 결국 새로운 디지털 컨버전스 서비스의 도입과 조기 활성화에 달려 있다. 와이브로·DMB·IPTV 등 멀티미디어 콘텐츠를 수용할 수 있는 플랫폼이 다양해지면 하나의 콘텐츠를 가공해서 다양한 상품으로 시장을 확대할 수 있다. 이러한 뉴미디어에 아시아 지역을 뜨겁게 달군 ‘한류’라는 문화콘텐츠를 상품화할 경우 새 수출 시장을 형성할 수 있을 것이다.
정부 역시 통신사업자가 신규 서비스에 대한 투자와 시장 활성화를 위한 생존 경쟁에 걸림돌이 되는 규제 리스크를 완화하는 데 정책적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이는 곧 우리나라가 IT 강국의 위상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강화하는 데 밑거름이 될 것이다.
◆유태열 KT 경영연구소장 yooty@k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