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위원회가 점수미달을 이유로 경인민방 사업자 추천을 거부하고, 사업자 선정을 원점으로 되돌렸다. 방송위는 “현재 방송위원들의 임기가 끝나는 오는 5월 9일 이전에 사업자를 재선정하는 데 최대한 노력하겠다”고 강조했지만 사업자 추천 거부에 따른 파장이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사업자 공모에 참여한 컨소시엄들이 벌써부터 심사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재심사 요청을 강하게 내비치고 있는 것만 봐도 그렇다.
이런 컨소시엄들의 반발이 전혀 잘못된 것은 아니다. 우리가 방송위의 심사결과를 믿지 못하겠다는 것은 아니지만 5개 컨소시엄이 그간 사업자 신청을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준비해온 상황을 고려하면 모두 기준 점수에도 미달하는 결과가 나온 것은 선뜻 이해되지 않는 게 사실이다. iTV비대위가 “임기만료를 바로 앞둔 2기 방송위가 골치 아픈 사안을 차기 위원들에게 떠넘기려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라고 본다.
방송위의 최근 움직임은 이 같은 오해를 사기에 충분하다. 물론 경인민방 사업자 재선정 결정을 내린 방송위의 고충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두 번 다시 방송중단 사태가 발생하지 않기 위해서는 사업자의 적합성과 건전성이 충분히 검토돼야 마땅하다. 하지만 유찰 책임을 컨소시엄들의 자격미달 탓으로만 돌리는 방송위의 태도는 이런 의혹을 풀기에는 역부족이다.
경인민방 새 사업자 선정은 지난 2004년 말 iTV 재허가 추천을 거부했을 때부터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경인·인천지역 1300만 시청자가 이른 시일내 사업자가 선정되기를 학수고대해 왔다. 이런 사정을 감안하면 방송위가 컨소시엄들의 자격 미흡을 탓하기 전에 유찰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얼마나 철저히 준비를 해왔는지 돌아보아야 한다.
방송위의 무책임성은 디지털방송 수신환경 개선문제에서도 잘 나타난다. 방송위의 현안 중 하나가 지상파 방송의 디지털전환이다. 그러나 현재 시청자들이 안테나로 직접 디지털 방송을 수신할 수 있는 비율은 32%에 불과하다. 방송위가 지금껏 이 문제 해결에 얼마나 노력했는지 의심스럽다. 아날로그방송의 디지털방송 전환이 목표대로 2010년까지 완성되려면 이런 수신환경 개선이 시급하다. 오죽하면 한국방송협회, 지상파 4사, 방송기술인연합회 등이 스스로 추진위를 구성해 디지털방송 수신 실태조사 등에 나서겠다고 하겠는가. 방송위가 방송의 공적책임과 공익성을 들어 경남·전남지역의 일부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 재허가 추천을 거부한 것도 한편으론 시청자를 무시한 처사로 볼 수 있다.
방송위는 세간의 의혹을 일소하기 위해서라도 임기 내에 경인민방 사업자를 반드시 재선정해야 한다. 그래야 책임 떠넘기기라는 비난에서 벗어날 수 있다. 또 SO 재허가 추천 거부도 원칙에 충실했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 방송위의 최대 역점 사업인 디지털방송 전환에 대한 점검과 수신환경 개선문제 해결에도 적극 나서야 한다.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았지만 방송위가 마지막까지 본연의 역할과 책임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불필요한 의혹을 잠재울 수 있다.
이와 함께 성과 집착이라는 의심을 받는 IPTV나 와이브로 등 신규 통·방융합 서비스의 규제 문제에는 한 발 물러서야 한다. 통·방융합 문제는 워낙 첨예한 사안이라 두달여 남은 기간에 해결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신규 통·방융합 서비스의 제도 정비는 차기에 넘겨주고 기존 방송법과 통신기본법 테두리 안에서 우선 해결하는 전향적인 자세를 가질 필요가 있다. 2기 방송위는 경인민방이나 SO의 재허가 추천 불허에서 보듯 원칙에 입각한 결정을 내려온 게 사실이다. 남은 임기에는 성과에 연연치 말고 그동안 견지해온 원칙에 걸맞은 책임과 행동을 보여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