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행선 위의 대론-. 지나친 표현일지 모르겠다.그러나 단말기 보조금 논쟁을 보면 그런 느낌이 든다. 찬성과 반대가 극명하게 대립한다. 단말기 보조금은 현행 전기통신사업법에 따라 오는 3월 26일까지 금지된다. 그 이후에는 규제가 풀린다. 그러나 정부는 공정거래위원회와 규제개혁위원회의 심사를 거쳐 ‘2년 규제 연장, 2년 이상 장기가입자에게 1회 허용’을 골자로 한 단말기 보조금 규제안을 마련했다. 지난 19일 당정협의에서 이런 안을 확정했다. 24일 국무회의도 통과했다. 2월 정기 국회에서 이 안이 통과된다면 2년간 단말기 보조금은 지급할 수 없다. 이를 어기면 과징금을 내야 한다.
정부는 지난 2003년 단말기 보조금 지급을 금지했다. 잦은 단말기 교체에 따른 자원낭비와 이에 따른 외화유출을 막고 시장질서를 바로잡는다는 것이 입법 취지였다. 그리고 3년 만료 기간이 다가오자 정부는 다시 규제안을 선택했다. 보조금 지급을 허용할 여건이 조성되지 않아 2년 더 연장하되 일부는 지급하는 쪽으로 절충안을 마련했다.
정부의 이런 안에 대한 견해는 이동통신사업자 간에도 엇갈리고 있다. KTF와 LGT 등 후발사업자는 정부안에 찬성한다. 이들은 선발 사업자가 풍부한 자금력과 마케팅력을 동원해 보조금을 지급할 경우 후발 사업자는 설 자리가 줄어들 것이라고 말한다. 선발기업의 시장독점을 심화시켜 소비자 후생이 감소한다는 것이다. 과다한 보조금 지급이 미래 투자를 줄어들 수 있게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선발 사업자인 SK텔레콤은 이에 반대한다. 시민단체도 이에 가세하고 있다. 이들은 보조금 허용이 소비자 이익에 부합한다고 말한다. 보조금은 일종의 할인판매라는 것이다. 기업이 할인판매를 하는 데 정부가 이를 규제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시장원리에 맡겨 소비자가 선택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양측의 주장은 일리가 있다. 나름의 논거도 있다. 그러나 해법은 정반대다. 그러다 보니 16일 김영선 의원과 류근찬 의원이 국회에서 마련한 ‘휴대폰 제도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토론회에서는 2년 가입자에 대한 보조금 허용보다 향후 2년 의무가입을 전제로 보조금을 허용하는 게 낫다는 대안도 나왔다. 2년 이상 가입자에게 보조금을 허용하는 것과 2년 의무가입을 전제로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에 별 차이가 없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이번 사안은 결국 선택의 문제다. 어차피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 지금은 정부안이 채택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변수가 있다. 2월에 국회가 열려야 한다. 만의 하나 여야의 대치로 국회가 공전한다면 정부가 마련한 개정안은 자동으로 폐기된다. 후발 사업자는 울고 선발 사업자는 웃는 양상이 벌어질 것이다.
하지만 가장 근원적인 문제는 사업자들이 정부한테 규제 빌미를 제공하지 않아야 한다. 그 길은 공정 마케팅이다. 기업들은 차별화·특화한 서비스로 고객을 유치해야 한다. 고객에게 최상의 통화품질을 제공하고 통화료를 내릴 때 가입자는 늘어난다. 이통사들은 매년 엄청난 이익을 냈다. 경쟁 업체보다 질 좋고 다양한 맞춤 서비스, 싼 요금 등을 제공하는데 이를 외면할 소비자는 없다. 이런 것을 실천하는 것은 기업 몫이다. 할 일 많은 정부가 기업에 대해 ‘감놔라 배놔라’ 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기업들도 뿌린 만큼 거두는 법이다. 기업들이 공정 마케팅을 실천하지 않으면 또 규제라는 심판대에 올라가야 한다. 그때는 후회해도 늦다.
이현덕주간@전자신문, hd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