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스포럼]쓰레기 종량제에서 IT 종량제까지

[리더스포럼]쓰레기 종량제에서 IT 종량제까지

종량제란 사용하거나 버리는 양에 따라 일정한 대가를 지불하는 제도로서 사용량과 무관하게 요금이나 비용을 지불하는 정액제에 대비되는 개념이다. 일상 생활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쓰레기 수거요금, 전기·수도·가스 요금 등이 대표적인 예다. 쓰레기 종량제는 쓰레기 배출량에 따라 규격화된 유료 봉투를 사용하는 제도로서 1995년 1월부터 시행되었다. 환경부에 따르면 이 제도가 실시된 이후 쓰레기 배출량이 20∼30% 감소했다고 한다. 그러나 시행 초기에는 처리의 번거로움과 과다한 봉투비용 등 반대 여론도 많았다.

 2004년 7월부터 시행된 서울시 대중교통 요금체계도 일종의 종량제라고 볼 수 있다. 종전에는 이동거리와 무관하게 승차할 때마다 정해진 버스요금을 지불했고 버스와 지하철 요금을 따로 지불했으나, 지금은 버스와 지하철이 연계되고 환승과 무관하게 이동 거리에 비례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이 역시 초기에는 장거리 이동자를 중심으로 반대가 많았으나 지금은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90년대 중반 이후 본격적으로 보급된 휴대전화는 초기부터 통화량에 근거한 요금방식이 적용되었는데 이는 제한된 주파수 자원의 낭비를 막자는 사회적 합의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최근에는 IT분야에서도 종량제가 사회적·기술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다. 인터넷 회선 사용료를 종량제로 하자는 주장에 대해 통신업계와 네티즌 사이에서 논쟁이 뜨겁다. 종량제를 적용함으로써 불필요한 정보의 홍수를 막을 수 있다는 주장과, 정보화 사회에서 생활 필수품이 된 인터넷에 종량제를 도입하는 것은 지나친 상업적 논리라는 주장이 맞서고 있는 상황으로, 보다 많은 사회적 논의가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주파수를 사용하는 휴대 인터넷 기술이 급속히 발전함에 따라 조만간 휴대 인터넷이 광범위하게 확산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인터넷 종량제는 현 시점에서 심각하게 검토해야 할 사안인 것은 분명하다.

 IT서비스 분야에서도 종량제 논의가 활발하다. 기업별로 정보시스템을 소유하고 운영하던 형태에서 IT 장비는 소유하되 운영은 전문업체에 위탁하는 방식으로 발전하더니, 이제는 IT 장비도 전문업체의 것을 사용하고, 그 사용량에 따라 비용을 지불하는 종량제 방식이 대두되고 있다. 선진 IT업체를 중심으로 컴퓨터 CPU와 메모리의 가동률(utilization)을 높이는 기술, CPU와 메모리의 사용량을 측정하고 사용량에 따라 요금을 매기는 기술 등이 상당 수준 개발됨에 따라 컴퓨터 종량제는 기술적으로는 상당히 근접한 상태다.

 종량제는 사용한 만큼 대가를 지불함으로써 자원과 비용의 낭비를 막고, 유한한 자원을 독점이나 소유가 아닌 공유의 개념으로 활용하자는 사상에서 출발한다. 사회가 발전함에 따라 활용도가 급격히 높아진 자원을 더욱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한 방책인 것이다. 그러한 차원에서 인터넷과 컴퓨터에 대한 종량제가 사회적 이슈가 된다는 점은 IT가 생활의 필수요소로 정착되었음을 입증하는 사례라고 본다. 생활에 필수 불가결한 자원을 일정한 금액을 지불한 후 마음껏 사용하던 방식에서 사용한 만큼 대가를 지불하는 방식으로의 전환은 자칫 비용 증가로 인식되기 쉽다. 그러나 필수품이라는 개념이 곧 사용량이 많다는 의미는 아니다. 예컨대 휴대폰은 통화를 해야 할 필요가 있을 때 언제 어디서나 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필수품이지만, 필수품이니 불필요한 통화까지 무한정 해도 당연하다는 의미는 아닐 것이다.

 종량제는 필요한 만큼 자원을 사용하고 사용한 만큼 비용을 부담함으로써 정액제와 비교해서 전체 비용을 낮출 수 있다는 효율성과, 유한한 자원을 더욱 필요한 곳에 배분할 수 있다는 효과성 측면에서 큰 의미가 있다. 따라서 종량제가 실현되고 정착되기 위해서는 사용량을 정확히 측정할 수 있는 기술과 합리적이고 정교한 요금정책이 개발되어야 하고, 이를 바탕으로 수요자와 공급자 간 합의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꼭 필요한, 그러나 유한한 자원을 아껴서 여럿이 함께 쓰는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김인 삼성SDS 대표이사 inkim@sams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