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서 서부산 톨게이트를 시작으로 남해고속도로를 타고 한 시간 정도 달려 마지막 관문인 듯한 창원터널을 지나면 한국 최초의 계획도시 창원이 한눈에 들어온다. 자로 잰듯한 쭉 뻗은 도로와 정돈된 가로수, 그리고 그 사이로 줄맞춰 들어서 있는 공장과 빌딩, 아파트 등은 이곳이 오래 전부터 계획된 곳이었음을 알게 해준다. 고속도로와 곧장 연결되고 창원을 크게 동서로 잇는 창원대로를 사이로 남쪽에는 산업단지가, 북쪽에는 도청과 시청을 중심으로 주거 상업지가 형성돼 있다.
단지 초입, 30여년 동안 한국 전기산업 발전과 맥을 같이해온 한국전기연구원, 그리고 삼성테크윈, GM대우 등 굵직한 대기업 브랜드가 차례로 눈에 띈다. 총 765만4000평 규모의 산업단지에는 현재 1591개사가 입주해 있다. 단지 중심에 LG전자와 카스코, 효성중공업 등이 자리잡았고 서남쪽으로 길게 이어진 단지 끝자락에 두산중공업과 볼보건설기계코리아가 우뚝 서 있다.
창원대로 중앙에 창원시청과 도청을 마주보며 서 있는 단지 관리단(여기서는 공단관리청이라 불린다) 건물이 독특하다. 일반적인 현대식 빌딩을 상상했는데 기와지붕의 전통양식을 갖춘 건물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지시로 이렇게 만들어졌다고 한다. 창원산업단지의 새로운 도약을 위한 창원혁신클러스터 추진단도 이곳에 있다. 과거 한국 중공업 발전의 중추적인 역할에서 이제는 새로운 도약을 위한 산업단지 혁신의 중심지로서 창원단지의 중요성은 30년이 훌쩍 지났어도 변치 않고 있다.
“거슬러 74년부터 조성되기 시작한 계획입지로 도로·항만·용수 등 인프라가 어느 곳보다 양호합니다. 동남권 산업벨트의 주축이며 주로 운송기계, 공작기계 등 기계 관련업종이 80%에 육박하고 있습니다.” 이장훈 창원클러스터추진단 기획평가팀장의 단지 현황에 대한 소개다. 국내 기계관련 생산량의 20%가 이곳에서 나온다. 경남지역 총생산의 36%, 경남지역 수출의 41%, 고용측면에서는 26%을 담당하고 있다. 그래서 여전히 창원기계공업단지라는 별칭이 기계처럼 따라붙는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니 생산 실적은 몇년째 보합세에 머물고 있다. 지난해 29조원의 생산실적을 올렸고, 올해는 31조원이 목표다. 공장 가동률은 전국 평균 대비 1∼2% 높은 81.7%라지만 2000년 이후부터는 정체라는 말이 더 어울릴 정도로 성장은 완만하다. 창원산업단지 혁신클러스터 추진의 배경과 목적은 바로 이러한 현실파악에서부터 시작된다.
창원산업단지의 현실은 비교적 명료하다. 상대적으로 부가가치가 낮은 범용제품의 조립생산에 치중돼 있어 가공·조립 기술은 뛰어나지만 설계 기술은 뒤처진다. 한마디로 현재 생산·판매중인 제품 관련 기술 및 노하우는 풍부하지만 앞으로 갖춰야 할 첨단 고부가가치 상품에 대한 연구기술 노하우는 미약하다. 특히 기술력이 있는 일부 중소기업을 제외하고 대부분이 대기업에 의존하는 단순 부품·소재 하청업체라는 점에서 더 이상의 기술축적을 담보하지 못하고 있다.
창원혁신클러스터 추진단(단장 이상천)은 지난 2005년부터 올 2008년까지를 혁신클러스터 기반구축의 시기로 정하고 한국형 클러스터 모형 정착에 주력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2009년부터 2013년까지 성장기반 확립과 초일류선도기업 육성, 2014년부터 2018년까지는 초일류 혁신클러스터 정착과 세계적인 첨단기계 산업클러스터 완성을 이룬다는 계획이다.
현재 기반구축의 시기에서 핵심은 산·학·연 혁신주체들의 혁신 마인드 제고다. 우리나라 혁신 클러스터 추진이 정부 주도형이다보니 억지로 끌려다니며 하는, 겉모습만 요란한 전시행정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깨뜨리는 것이 관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단지를 돌다보면 흔하게 눈에 띌 것 같은 클러스터 관련 플래카드나 포스터도 잘 보이지 않는다.
이상천 추진단장은 “그렇다. 과거 국책사업이라 하면 겉만 화려할 뿐 향후에는 몇몇 이해당사자끼리만 모이고 남게 되는 것을 여러차례 보아왔다. 우리 추진단은 최대한 많은 기업이 참여해 이번 혁신사업이 단지내 모든 기업들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할 수 있도록 내실있는 추진에 역점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따라서 기반구축을 위해 가장 먼저 시작한 일은 ‘가치혁신 워크숍’ ‘추진단장과의 토론문화 형성’ ‘이달의 클러스터인 제도’ ‘혁신 확산을 위한 활동 및 교류 지원’ 등이다. 모두가 혁신클러스터 사업에 관심을 높이고 참여를 유도하기 위한 장치다.
사업추진이 지난해 3월부터 시작돼 어떤 성과라 할 것이 분명치 않지만 일단 ‘미니클러스터’ 구성과 초미니클러스터로 불리는 ‘팀클러스터’ 참여를 통한 소규모 커뮤니케이션 활성화가 두드러지게 나타나기 시작한 것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단지에서 5년째 방산부품업체 SG SERVO를 운영하고 있는 조정현 사장은 “그동안 관의 지원이라는 것이 자금 지원 외에는 그저 형식적인 것에 불과하다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이번 혁신 클러스터 추진은 기업간 네트워크 형성에 노력하고, 특히 기업이 필요로 하는 현실적이고 섬세한 부분까지 신경써주고 있다는 점을 피부로 느낀다”며 “(참여하고 있는) 메카트로닉스 미니클러스터가 당장 어떤 이익을 주지는 못하지만 대기업 실무책임자 등과 교류할 수 있어 앞으로 여러 면에서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기에 꾸준히 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산·학·연 네트워크 구성 주체인 단지내 한국기계연구원 채재우 선임연구원은 “(클러스터 사업이) 채 1년도 지나지 않아 성과를 논하기는 이르다. 여전히 혼란스런 모습도 보이고 무엇보다 인위적인 것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이 시급하다”며 다소 비판적인 시각을 내보이면서 “발상 자체와 취지가 좋기 때문에 몇몇 시행착오를 겪으면서도 서서히 자발적인 혁신 문화가 조성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기계연구원은 금형과 금속소재 관련 2개 미니클러스터를 주도적으로 설립해 운영하고 있으며 올해부터 미니클러스터 운영의 중심을 기업체로 자연스럽게 이전하는 작업을 진행중이다.
이와 관련, 이상천 단장은 “우리 추진단의 자랑이자 차별화 포인트라면 바로 지역 클러스터를 선도하는 혁신마인드 제고 사업을 꼽고 싶다. 겉으로만 떠들고 정작 내부를 들여다보면 주체들이 잘 모르는 형식적 클러스터 추진이 아닌 밑바닥부터 혁신마인드를 심어 전방위로 확산되는 혁신 마인드를 심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혁신마인드 제고 사업을 발판으로 추진단은 혁신주체간 의사소통 및 정보교환을 촉진할 수 있는 정보교류 지원체계를 구축하고 미니클러스터의 자생적 생성·발전을 유도하고 있다. 초기에는 미니클러스터의 설립을 주도적으로 이끌고 이후부터는 미니클러스터 구성원 스스로 미니클러스터의 목적과 운영을 결정해 나가도록 만든다. 현재 5개의 미니클러스터가 운영되고 있으며 기업 311명, 연구소 29명, 대학 51명, 지원기관 23명 등 400명 이상의 CEO·교수·연구원 등이 회원으로 참여해 활동중이다.
전국 각지의 산업단지 미니클러스터 설립과 운영은 이곳 창원을 벤치마킹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미니클러스터 회원 중 관심분야, 전공분야, 업종 등에 따라 5∼7명으로 구성되는 23개의 프로젝트팀은 혁신클러스터 추진의 셀과 같은 역할을 담당할 전망이다.
클러스터로 도약하기 위한 산·학·연 커뮤니케이션의 활성화라는 긍정적인 초기 성과의 이면에는 개선해야할 사항도 많다. 클러스터 사업 인지도와 필요성, 공감대가 지속적으로 높아지고 부분적으로 상호협력 효과도 나타나고 있지만 세부사업 추진에서 불필요한 요소와 비효율적 진행의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또한 커뮤니티 역할을 넘어선 미니클러스터의 자생적 발전을 위한 해법 찾기도 시급하다.
이에 따라 추진단은 사업예산 재편을 통한 세부실행 사업의 혁신적 개선과 추진단 인증제도 도입을 통한 자금분야 지원확대,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혁신교육추진 통합협의체 구성 등으로 2006년에는 더욱 분명한 추진성과를 거두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이상천 단장은 “70년대 국가산업단지를 지정해 주력산업을 중심으로 연관산업의 집적을 정책적으로 유도하고 고속 성장을 달성했다면 이제는 기존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국제 경쟁력을 갖춘 핵심기술과 상품 생산력을 갖춘 작지만 강한 기업의 육성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이것은 바로 국가주도형 클러스터 추진을 통해 이뤄낼 수 있다”고 자신했다.
◆기업사랑방 ‘이노카페’
“해외 수출을 하려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나요. 자금 지원은 가능한가요?”
혁신클러스터 추진단 바로 옆 이노카페(Inno-Cafe)는 단지내 중소기업들의 경영 상담과 자문을 위한 기업사랑방이다. 지난해 9월 문을 연 이후 창원산업단지 혁신클러스터 추진 사업에 오아시스 같은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기업, 특히 중소기업들이 겪고 있는 각종 애로사항을 상담하고 해결방법까지 찾아주는 것이 주목적이지만 클러스터 사업의 진정성을 알리고 나아가 참여를 유도하는 역할까지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들은 이곳 사랑방에서 혁신클러스터 추진단의 현실적인 지원과 도움을 받고나면 단지가 달라지고 있고, 또 클러스터 사업이 필요하고 좋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게 된다.
기업사랑방을 통해 접수한 각종 애로사항은 각각의 유형에 따라 혁신추진단이 운영하는 전문가 풀(pool)을 이용한 컨설팅을 받는다. 간단한 것은 그 자리에서, 심도 있는 연구와 지원이 필요한 경우에는 추진단 지원사업 연계 등을 통해 일체형 해결을 모색한다. 그동안 공식적으로 진행한 상담만 100여건에 이르며 이중 30여건은 곧바로 클러스터사업 연계 과제로 선정돼 지원되고 있다. 특히 경영컨설팅과 마케팅 전략 자문 등 기본 업무는 물론 이후 클러스터사업 연계에 필요한 비용 일체를 클러스터 추진단에서 지출해 기업 부담을 최소화하고 있다.
혁신의 주체가 돼야 할 기업중심의 혁신클러스터를 만들기 위한 창원혁신클러스터 추진단의 노력과 의지, 그리고 그 성과의 시작은 이곳 40여평의 작은 기업사랑방에서부터 나타나고 있다.
◆기고-이상천 창원 혁신클러스터 추진단장 sclee@yumail.ac.kr
창원산업단지는 지난 세기 한국 경제성장을 주도했던 기계산업의 요람지다. 고용인원 7만2000명, 총생산액 280억 달러, 수출액 100억 달러를 달성하며 국내 기계산업 분야 총 생산액의 20%를 점유하고 있다. 1300여 기업체가 입주해 있는 창원단지는 공작기계, 자동차, 산업기계, 가전기기 등 완제품을 조립·가공하는 40여개의 대기업을 중심으로 중소규모의 협력업체들로 구성돼 있다.
그러나 현재 창원단지의 기계산업은 국내 여타 산업과 마찬가지로 대내외적 위기상황에 직면해 있다. 일부 대기업이 생산공장을 중국 또는 동남아시아권으로 이전 중이거나 계획하고 있어 창원단지 내 기계산업 전망이 불투명해졌고, 고부가가치 핵심 기계부품·소재의 수입 의존도가 높은 반면 연구개발력은 선진국보다 떨어진다. 또 중국 등 신흥 개발도상국의 맹추격으로 국내외 시장에서의 경쟁력 상실이 우려되는 이른바 ‘넛크래커’ 처지에 놓였다.
실제로 창원단지는 ‘레드오션’시장인 범용 기계부품·소재분야에서는 어느 정도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으나 ‘블루오션’시장으로 각광받는 첨단 부품·소재분야의 원천기술은 부족하다. 그 결과 해외공급선 의존도가 매우 높다. 더욱이 기계부품·소재분야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중소기업은 영세하고, 개별부품의 수요 또한 규모의 경제에 미치지 못해 설비투자와 기술개발 여력이 약하다. 특히 시험평가, 시스템 통합 공정설계 등 핵심기술은 선진국의 60% 수준에 불과하며 부품 표준화, 공용화, 완제품-부품업체간 정보인프라도 미약하다.
이 같은 현실 속에서 창원단지의 혁신클러스터화 사업은 어떤 방향으로 추진돼야 하는가. 해답은 이미 도출돼 있다. 생산기능중심의 중소형 부품소재업체에 연구개발기능과 경영혁신기능을 부가함으로써 지식기반사회에 걸 맞는 ‘작지만 강한 기업’으로 거듭나도록 유도해내는 것이다. 이를 위해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부품·소재의 개발단계에서부터 협력하는 수요-공급자간 네트워크 형성이 시급하다.
이에 따라 창원 클러스터추진단은 지난 해 4월 출범과 함께 가장 먼저 산학연관 집합체인 ‘미니클러스터’ 구축에 나섰다. 이를 전략적 거점으로 삼아 기업체와 연구기관, 대학을 유기적으로 연결해 혁신기술 개발 및 애로기술 해결에 공동으로 참여하는 시스템을 정착시켜나가기 위해서다. 이러한 시스템이 구축될 때 비로소 창원 클러스터는 핵심 기계부품·소재의 원천기술 확보를 통한 고부가가치 완제품 생산력을 갖추게 될 것이다.
이는 대기업에 제품경쟁력 강화를, 중소기업에는 안정적인 납품처 확보의 길을 열어 결과적으로 기업 모두의 상생을 위한 새로운 협력모델을 제시해 줄 것으로 기대된다.
또 중소부품소재업체 경영인들에게 혁신마인드를 갖춘 기업가 정신을 북돋아 주는 동시에 올바른 혁신을 할 수 있도록 최고급 지식과 정보를 접하는 교육의 장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대기업과 부품·소재업체간 전속적·수직적 관계를 대체할 자립형 상생의 틀을 갖추도록 유도하는 지원도 필수다. 글로벌 소싱 추세 속에서 국제적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부품·소재업체의 전문화와 대형화도 중요하다. 아울러 전통적 기술에 IT와 NT 등을 결합한 첨단부품개발을 집중적으로 지원하고 유도할 방침이다. 특히 파급효과가 큰 차세대기술 확보를 목표로 산학협력 지원사업을 적극 장려하고 활성화하는 일에 주력하고 있다.
우리나라 산업단지 혁신클러스터화 사업은 중앙정부 주도형으로 추진되고 있는 만큼 그 속도나 효과 면에서 더욱 큰 성과를 낳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작지만 강한 기업, 그리고 혁신클러스터.” 이것이 바로 급변하는 세계경제의 흐름 속에서 우리가 선택한 생존전략이자 새로운 도약의 발판이다.
부산=임동식기자@전자신문, dsl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