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보과학회 등 컴퓨터교육 관련 학회가 제7차 교육과정 개선안이 정보통신기술(ICT) 교육의 황폐화로 이어진다며 청와대에 건의서를 제출했다. 이들은 이번 개정안의 확정을 보류하고 컴퓨터 교과를 독립 필수 과목으로 전환해줄 것을 요청했다. 이에 앞서 정부가 지난달 초 주5일제 수업에 맞춰 제7차 교육과정 개선안을 마련하면서 각 학교의 재량활동 시간을 절반으로 줄이겠다고 하자 전국 20여개 교육대학 및 사범대학 컴퓨터 교육학과 교수들이 비상대책위를 발족하고 철회를 요구했다. 재량활동 단축에 따른 ICT 교육계의 우려와 반발이 갈수록 확산되고 있다.
이번 교육과정 개선안은 주5일제 수업이 배경인만큼 재량활동 단축이 어쩔 수 없는 선택일 수는 있다. 재량활동은 정규 수업이 아닌만큼 상식적으로 단축의 첫 대상이 된 셈이다. 정부가 이번 개선안의 골자가 국민공통 기본 교육과정과 선택중심 교육과정 체제 도입에 있다고 밝힌 것에서도 이 같은 의지가 드러난다.
문제는 현실이다. 재량활동 시간 단축은 곧 ICT 교육의 축소 내지 폐지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현재 초·중등 교과과정에서 ICT 교육은 독립 과목이 아니다. 초등학교에서는 실과의, 중등학교에서는 기술·가정의 한 단락에 포함돼 있다. 일찍부터 입시전쟁을 치르고 있는 우리의 교육여건상 예체능 과목과 같은 독립 과목보다 점수배점이 현저히 낮은 ICT 교육이 재량활동에서 빠질 것은 불을 보듯 훤하다.
우리나라는 세계 최고의 인터넷 및 휴대전화 보급률을 자랑하는 인프라와 ICT산업, 이용률에서도 가장 앞서 나가고 있다. 이미 ICT는 물이나 음식과 다름없이 우리 생활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어 정보격차 해소와 사이버 윤리 정립이 사회 과제로 떠오른지 이미 오래다. 건전한 인성과 창의성 함양은 물론이고 세계화·정보화 시대에 적응할 수 있는 인재 양성을 위해서는 숨쉬는 공기나 다름없는 ICT환경을 배제하고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게 오늘의 현실이다.
정부는 7차 교과과정 개선의 기본 방향이 건전한 인성과 창의성을 함양하는 기초·기본 교육의 충실과 세계화·정보화 시대에 적응할 수 있는 교육 등에 있다고 강조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재량활동 시간 단축이라는 선택으로 개선안의 기본 정신을 스스로 훼손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 얼마 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조사에 따르면 한국 학생은 컴퓨터를 오락용으로만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학교공부를 위해 PC를 이용하는 학생 비율은 평균의 3분의 2에 불과하고, 프로그래밍 활용비율은 40개국 중 39위로 꼴찌였다. 세계 최고의 보급률 및 이용률과 비교해 충격적이지 않을 수 없다.
우리의 ICT 교육의 문제점은 이번 개선안을 마련하기 위해 실시한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실태 분석에서도 지적된 바 있다. 이 자료에 따르면 학생·학부모·전문가 모두 컴퓨터 교육이 매우 필요하거나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반면 교과 내용과 학습지도는 불충분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우리나라는 정보기술 그 자체에 대한 지식과 기능을 중시하는 반면 외국은 문제 해결을 위한 정보관리 능력과 다양한 프로그램 이용, 학습활용에 있어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지적됐다.
주5일제 수업을 위해 재량활동 단축이 불가피하다면 ICT 교육을 독립 필수 과목에 포함해야 한다는 주장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더불어 교과 내용과 수업방식도 지식과 기능을 중시하는 주입식에서 탈피해 ICT 소양을 함양하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 실생활에 유익하게 활용함은 물론 창의성을 기를 수 있는 방향으로 바꾸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