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칼럼]한·미 FTA 과정이 중요하다

우리나라와 미국의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이 시작됐다. 내년 6월 협정 체결을 목표로 하고 있다. ‘무역에 의해 쇠락한 국가는 없다’는 벤저민 프랭클린의 말처럼 이제 우리의 부를 창출할 새로운 협력의 장이 마련된 것이다. 우리나라는 FTA 체결에 소극적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제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과의 협상에 나섬으로써 FTA 흐름에 본격 합류한 것이다.

 한·미 FTA는 그간 맺었거나 추진중인 협정과 영향 면에서 비교할 바 아니다. 거의 모든 국민이 좋든 싫든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독 아니면 약이다. 잘못 처방하면 치명적일 수 있다. 세계 최대 내수 시장인 미국에 장벽 없이 접근할 수 있다는 건 분명 기회다. 우리나라 위상을 높이는 상징적 의미도 있다. 대내적으로도 외국인 투자유치와 선진 서비스산업 유입을 통한 경제 선진화 계기가 될 수 있다. 경제적 결속은 양국의 동맹관계에도 큰 보탬이 될 것이다.

 그렇다고 한·미 FTA가 마치 선진경제 진입을 보장하는 보증수표인 양 환상을 갖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경제 체질이 달라지고 경쟁력이 강화되는 긍정적 효과는 장기적으로 서서히 나타난다. 그러나 당장은 개방에 따른 서비스업과 농업의 시장 상실, 미국식 규범의 강제화 등의 피해와 고통이 기다리고 있다. 자칫하면 모든 기준을 미국식 흐름에 맞추거나 따라가야만 하는 ‘신종속주의’에 빠질 우려도 배제하기 어렵다. 국제 금융자본의 본류인 미국 자본이 아무 장벽 없이 국내 금융시장을 휘젓는다는 건 두려운 일이다. 금융당국 수장이 최근 참여정부의 주류 흐름과 달리 산업과 금융자본 간 분리정책을 다시 고민할 시점이라고 말한 것이 이해된다.

 한·미 FTA 협상이 우리 경제의 미래를 좌우할 수 있는 대사임은 분명하다. FTA는 경제 통합의 주요한 수단이어서 진지하게 논의돼야 한다. 그래서 고도의 협상력과 만반의 대비가 필요한 것이다. 그만큼 우리의 카드를 곰곰이 따져봐야 한다.

 미국이 우리와 FTA 협상을 추진하는 목적은 뭘까. 우리는 경제적인 이득을 상당히 따지는 편이다. 하지만 미국은 동북아 시장에서 추락한 위상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면서 미국의 건재를 다시 한번 전세계에 과시하는 계기로 삼고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중국이 부상하기 전까지 미국은 동아시아에서 절대 권력을 행사했다는 점을 이유로 들고 있다. 한·미 FTA 협상 소식에 당장 일본과 중국이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종합적으로 고려해보면 정치·외교적 측면에서 한·미 FTA를 통해 우리보다 미국이 얻는 유무형의 효과가 더 크다. 동아시아에서 아시아 지역주의 바람이 불고 있는 와중에데 FTA를 통해 확실한 교두보를 마련할 수 있게 되는데 이것이 미국에 큰 이익을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미국의 처지에서 볼 때 한·미 FTA는 협상의 결과보다 시작이 더 중요하다.

 이처럼 미국에는 시작이 중요하다면 우리로서는 과정이 중요하다. 협상 기간이 1년여에 불과해 촉박하기는 하지만 미국의 시간표에 얽매여 끌려다녀선 안 된다. 미국이 무엇을 원하고 요구하든 간에 우리는 미국의 거울에 그 모습을 비춰보면서 일그러진 골격이 있다면 고쳐 나가는 여유를 갖고 협상을 이끌어 가야 한다. 그리고 미국과의 경제 통합으로 무엇을 기대하며 이러한 기대를 실현하기 위해 무엇을 양보할 준비가 돼 있는지를 숙고해 봐야 한다. 미국과 마찬가지로 FTA를 전략적·경제적 이해를 극대화하는 차원에서 접근해야 하는 것이다. 한·미 FTA에 서둘러야 할 나라가 어디인지부터 따져 보자. 우리가 원하는 만큼 미국의 양보를 얻어내기 위해서다.

◆윤원창 수석논설위원 wcyoo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