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대 슈퍼컴퓨터 프로젝트 수주전이 예상과 달리 ‘싱거운’ 출발을 했다. 지난 21일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의 슈퍼컴퓨터 4호기 입찰을 마감한 결과, 참여업체는 한국HP와 한국IBM 단 두 곳이었다. 내로라는 슈퍼컴퓨터 전문업체들이 사업 참여를 포기했다. 세계 슈퍼컴퓨터 5위권 진입을 목표로 계획된 무려 600억원 규모의 슈퍼컴퓨터 프로젝트다. 당연히 불꽃튀는 경쟁을 벌일 것이라는 예상됐지만, 실상은 본 게임에 들어가기 전부터 2파전으로 압축된 것이다. 1차 선정에 이어 우선 협상자 선정, 최종사업자 선정 등으로 이어지는 세부 계획을 마련해 놓은 KISTI로서는 머쓱해 질 정도의 낮은 경쟁률이다. 사상 최대 규모의 슈퍼컴퓨터 프로젝트인만큼 ‘경마 중계식 보도’까지 각오했던 기자도 기사 계획을 다시 짜야 할 판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게임은 벌써 끝난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전체 사업이 2개 부분으로 나눠져 있고 사업 주체인 KISTI가 대규모 사업을 한 벤더(공급업체)에 몰아주기를 의도적으로 피한다고 보면, 사업에 참여한 두 업체 모두 공급권을 딸 가능성도 적지 않다. 그래서 걱정이다. 치열한 경쟁이 없다면 검증 작업 역시 느슨하게 진행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 때문이다. ‘슈퍼컴퓨터 4호기’는 말 그대로 국가 과학 연구 수준을 획기적으로 도약시킬 인프라로서 큰 역할을 해야 하는데 말이다. 사업을 포기한 업체가 많았다는 것은 그만큼 이 사업이 쉽지 않고 리스크가 많다는 것을 방증한다. ‘슈퍼컴퓨터 프로젝트가 아니라 SI사업 프로젝트였다’ ‘KISTI가 요구하는 사항을 다 들어주기에는 제안가격이 낮다’ ‘칩 로드맵을 검증하기에는 위험이 크다’ 등등은 사업 입찰자나 불참자나 동일한 목소리였다.
레이스는 싱겁게 출발했지만, ‘금메달급’ 슈퍼컴퓨터 4호기가 가동됐으면 한다. 가격만 깎는 낮은 수준의 프로젝트 검증에서 벗어나 선정부터 구축, 가동에 이르기까지 국내 슈퍼컴퓨터 수준을 한 단계 도약시키는 마무리가 필요하다. 2009년께 완전 가동되는 슈퍼컴퓨터 4호기가 원래 계획대로 제대로 쓰고 있는지 확인해 달라는 심정에서 이런 기록을 남긴다.
류현정기자@전자신문, dreamsho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