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콘텐츠포럼]리니지 사태를 보며](https://img.etnews.com/photonews/0602/060224024031b.jpg)
온라인게임 ‘리니지’의 불법 명의도용 사건이 일파만파를 부르고 있다. 명의도용된 피해자만 해도 벌써 20만명을 넘어서고 있다고 한다. 엔씨소프트가 사회적 논란의 중심이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2년 ‘리니지’ 내의 PK(Player Killing, 게임상에서 상대의 캐릭터를 죽일 수 있는 것) 시스템을 둘러싼 논쟁, 2004년 ‘리니지2’가 영상물등급위원회의 18세 이상 이용가와 정보통신윤리위원회의 19세 이상 이용가라는 이중판정 후 불어 닥친 이른바 ‘이중심의 문제’ 그리고 이번 명의도용 사건이다. 우연인지는 모르지만 지금까지 2년마다 엔씨소프트는 사회적 논란의 중심이 되곤 했다. 우연치고는 대단한 우연이다.
창립 후 처음으로 지난 2002년 엔씨소프트가 사회적 비난에 직면했을 때 엔씨소프트는 진지하게 반성했다. 김택진 사장 이하 전 직원이 강당에 모여 ‘왜 우리는 사회적 지탄을 받아야 하는가’ ‘왜 리니지를 사랑하는 고객들이 엔씨소프트에 돌을 던지는가’를 고민했다. 그리고 그동안 자신들이 고객과 사회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음을 인정하고 새로운 기업, 고객으로부터 사랑받는 기업으로 다시 태어날 것을 다짐했다. 당시 내가 만났던 김택진 사장의 진지한 눈빛을 보면서 이런 엔씨소프트의 다짐은 거짓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러한 엔씨소프트의 다짐이 아직 충분하지 못함을 이번 명의도용 사건은 보여주고 있다. 명의도용 사건이 터진 후 자신의 명의도용 여부를 확인하려는 사람이 엔씨소프트에 전화를 걸어도 연결되지 않았다고 한다. 아직 엔씨소프트가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다. 또 이번 사건에 대한 회사 대응을 둘러싸고 사내에서 강경파와 온건파가 대립하기까지 했다. 이는 아직 사회적 가치로서의 기업이 무엇인지 모르고 있음을 말한다. 하지만 이런 엔씨소프트의 문제에도 불구하고 엔씨소프트의 모든 게임을, 아니 온라인게임게임 산업 전체를 매도하지는 말자.
최근 명의도용의 불똥은 온라인게임 산업 전반에 대한 부정으로 확산되는 것 같다. 그 한 예가 ‘리니지’로 대표되는 한국 게임이 아이템 현금거래 시스템을 앞세운 게임이라는 점이다. 이는 전혀 사실과 다르다. 내가 분석한 바에 따르면 아이템 거래를 전면에 내세워도 게임은 성공할 수 없고, 반대로 성공한 게임에서는 아이템 거래가 활발해진다. 한국보다 더 아이템 거래가 활발한 중국에서 ‘리니지’가 성공하지 못한 것을 보면 알 수 있지 않은가.
또 한국보다 게임성이 뛰어난 온라인게임이 지배하고 있는 미국 시장에서도 아이템 현금거래 시장은 존재하며, 확대되고 있다.
얼마 전 한국의 3∼4세 유아의 절반 가량이 인터넷을 사용한다는 통계가 발표됐다. 이런 통계에 대해 우리는 “놀랍다”는 감탄사 한번으로 끝나지만 외국인들은 감탄사로 끝나지 않는다. 일본 도쿄에서 열린 아시아온라인게임 콘퍼런스 강연에서 이런 통계와 네살배기 딸의 인터넷 이용 사례를 소개하자 참가자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왜냐하면 일본의 어린이들은 초등학교에 들어갈 때까지 PC를 접할 기회가 그다지 없기 때문이다. 일본 어린이들이 주로 접하는 것은 플레이스테이션이나 게임큐브와 같은 게임기다. 한국 어린이들이 온라인게임을 통해 PC 사용법을 숙달하고 메일과 검색 그리고 채팅을 통해 국경을 넘는 커뮤니케이션을 준비할 때 일본 어린이들은 게임기 속에만 빠져 있다. 이런 차이는 10년이 지난 후 디지털콘텐츠 산업에서의 엄청난 창조력 차이로 드러날 것이다.
한국 온라인게임에 대한 평가 역시 국내보다는 해외에서 더 높다. 누적 매출이 1조원에 육박하는 ‘리니지’를 개발한 송재경씨는 해외의 게임펀드로부터 많은 유혹을 받고 있지만 한국산 게임을 개발하는 자신의 길을 걷고 있다. 지금도 외국 게임사는 한국 게임사를 사들이기 위해 매각의사를 거듭 타진하고 있다. 이런 산업과 기업을 껴안지는 못할망정 밀어낼 이유는 없다. 분명 엔씨소프트는 참다운 ‘기업’이 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조직이다. 하지만 비판은 하되 비난은 하지 말자. 그리고 사내에서 엔씨소프트를 바로세우기 위해 노력하는 소수에게 격려를 보내자.
◇위정현(중앙대 교수·경영학) jhwi@ca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