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전자수출 1000억달러 돌파를 기념하는 자리에서 오는 2015년 전자산업 총생산 590조원, 수출 3000억달러를 목표로 한 세계 3위 디지털 전자강국 비전을 발표했고 민·관·연이 함께 전자의 날을 제정하자며 화려한 행사도 가졌다. 전자산업 종사자로서 가슴 뿌듯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그 꿈을 달성할 수 있을지 불안해지고 있다. 주요 전자업체의 올해 생산 전망이 밝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전자산업진흥회 조사에 따르면 국내 주요 5개 전자회사가 올해 국내외로부터 구매할 계획으로 잡고 있는 전자부품 규모는 26조64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기업이 지난해 25조700억원어치의 부품을 구입했던 것에 비하면 고작 4% 증가한 것이다. 이는 지난해 증가율 12%에 비해서도 3분의 1 수준이다. 부품 구매량은 곧 전자제품 생산의 바로미터인 점을 감안하면 이들 업체가 올해 전자산업 전망을 결코 밝게 보지 않고 있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휴대폰 부품 구매 비중이 지나치게 높은 것도 걱정스러운 점이다. 전체 부품 구매계획 가운데 휴대폰용 부품 구매액이 무려 61.7%인 14조4727억원에 달할 정도로 의존도가 가히 절대적이다. 휴대폰 생산 비중이 높고 부품 구매 유발효과 또한 크다는 뜻이지만 반대로 TV·PC·냉장고 등 기존 품목들의 국내 생산이 취약해졌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국내 생산 관점에서 본다면 이제 휴대폰 없이는 국내 전자부품산업이 설 수 있는 입지가 매우 좁아졌다는 것과 같다.
주요 전자업체의 전자부품 구매 계획이 둔화된 것은 지난해 일기 시작한 세계 각국 간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바람과 연초부터 발생한 원화급락이 주 원인으로 보인다. 전자산업 수출이 2004년에 30% 가까이 증가했지만 지난해에는 고작 6.3% 신장하는 데 그쳤다. 우리나라가 FTA에서 소외돼 주력 품목의 경쟁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진 탓이 크다. 올해에는 원달러 환율이 세 자릿수를 유지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수출증가율은 한 자릿수에 머물 가능성이 크다는 얼마 전 삼성경제연구소의 발표가 현실화되고 있다는 느낌이다. 전자의 날 제정을 선포하며 다짐했던 매년 10% 성장은 첫해인 올해부터 난관에 부닥칠 전망이다.
대부분 현지 생산체제로 전환된 타 품목에 비해 휴대폰은 국내 생산 비중이 절대적으로 높다. 그만큼 원화절상에 따른 영향도 클 수밖에 없다. 지금과 같은 원화강세가 계속된다면 아무리 경쟁력 있는 휴대폰 산업이라 할지라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고, 이로 인해 관련 부품산업도 어려움을 겪을 것이 분명하다. 휴대폰의 생산과 수출에 조그마한 차질이 빚어지면 국내 전자부품산업에는 커다란 회오리바람이 일게 될 것은 불문가지다. 차세대 전략산업으로 육성중인 전자부품 산업에 치명적이다.
원화절상이 계속된다면 절대적인 부품 구매액 감소는 물론이고 국산 부품 조달 비중 역시 크게 떨어질 것으로 우려된다. 이미 대부분의 부품업체가 원화절상에 따른 가격경쟁력 약화로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똑같은 어려움에 처해 있는 세트업체들이라 가격경쟁력이 떨어지는 국산보다 외산을 채택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더는 원화절상을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할 수는 없는 일이다. 단기적으로 가장 민감한 휴대폰과 관련 부품산업에 미치는 영향을 철저히 분석하고 적절한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 수출에 차질이 생긴다면 내수활성화와 같은 특단책도 고려할 만하다.
최근 디지털TV 보급확대 정책도 급한 대로 일조할 것이다. 중장기적으로는 전자부품산업의 기반이 되는 세트산업의 구조를 휴대폰 일변도에서 다변화해야 한다. 차세대 성장동력 중에서라도 포스트 휴대폰 품목을 앞당겨 육성해야 한다. 업계도 원화강세 시대에 대응할 수 있는 경쟁력을 갖추는 데 만전을 기해야 함은 물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