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분야든지 가격이나 품질을 차별화한 제품을 누가 먼저 개발해 시장에 내놓고 선점하느냐가 성패의 관건이다. 갈수록 점유율 경쟁이 심해지는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반도체 분야에서 확실한 우위를 확보하려면 최신 기술을 한 발 앞서 개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수요가 발생할 때 즉시 제품을 생산해 공급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을 이끌고 있는 쌍두마차인 삼성전자와 하이닉스반도체가 300㎜ 전용 연구개발(R&D) 라인을 신설하면서 양산 라인과 연계성을 강화하는 형태로 팹을 구축한다는 소식은 이런 점에서 우리의 눈길을 끌기에 충분하다. R&D 라인과 양산 라인을 연계해 구축하는 것은 연구·생산자원 집중형 반도체 팹 조성 방식으로 시장 상황에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반도체 라인 집적화는 특히 첨단 기술 개발 결과를 제품 양산에 빠르게 이전할 수 있다는 점에서 반도체 업체들의 경쟁력 향상도 기대된다. 그만큼 두 회사의 이번 투자계획은 최근 ‘타도 한국’을 목표로 투자를 강화하고 있는 미국·일본·유럽 등 세계 반도체 업체와의 격차를 벌려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우위를 견고히 다지겠다는 대응전략으로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만하다.
사실 반도체 산업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대규모 자금이 요구되는 생산설비에 대한 투자가 시의 적절하게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이다. 더욱이 우리가 주력으로 삼고 있는 메모리반도체는 수요가 줄고 가격이 하락하는 불황 사이클에서도 투자를 단행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위험이나 불확실성이 크다고 해서 투자를 늦춘다면 반도체 호황기를 맞아도 경쟁사보다 제품 출시가 늦어져 큰 수익을 내기 어려운 산업적 특성 때문이다. 그래서 자금여력이 많은 대기업이 아니면 대규모 투자를 감당하기 어렵고, 치열한 반도체 시장에서 일정 수준의 점유율을 확보해 채산성을 맞추기가 불가능한 것이다.
이런 점을 감안할 때 이번에 두 회사가 구축하는 300㎜ 전용 R&D 라인은 시장 상황에 따라 양산 라인으로 전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유연성이 기대된다. 더욱이 두 회사는 이번 투자를 통해 차차세대 반도체 제품의 R&D 시설을 갖춤으로써 경쟁력을 더욱 높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또 두 회사의 R&D 시설 투자는 반도체 장비업체는 물론이고 관련 산업 분야에 긍정적인 효과를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무엇보다 두 회사가 300㎜ 전용 R&D라인을 구축하기 위해 1조원가량을 투자하면 국가 경기를 활성화하는 촉매 역할을 할 것임이 틀림없다. 리딩기업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여실히 보여주는 셈이다.
동시에 두 회사의 투자는 5∼10년 후 먹을거리를 고민하는 지금 그 돌파구가 무엇인지도 분명히 제시하고 있다. 다른 분야에서도 리딩기업의 선도적 투자가 잇따르길 기대한다. 그렇게 되면 지금의 침체된 투자 분위기는 크게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사회 역시 새로운 도전에 나서는 기업을 격려하는 그런 분위기가 조성돼야 함은 물론이다.
반도체는 우리나라 수출의 효자 품목이다. 국가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매우 높다. 따라서 우리는 두 업체가 이번처럼 가장 효율적인 투자와 고부가가치 기술 개발에 매진해 미래 반도체 시장의 지배력을 더욱 확대해 주기를 바란다.
이와 함께 세계적인 업체들이 도전해 와도 우리 기업이 기술적 우위를 지켜 나갈수 있도록 투자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선 국가적인 지원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기업의 투자의욕이 가장 중요하다. 지금처럼 반기업 정서를 보이는 사회 분위기에선 살아남을 수 없는만큼 투자규제 완화 등 친기업적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