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IT를 취재하기 시작한 2년 전. 대형 은행의 부행장급 최고정보책임자(CIO)와의 인터뷰는 으레 거룩한(?) 질문과 답변으로 채워지게 마련이었다. ‘금융 IT의 갈 길’ ‘차세대 시스템 추진 계획’ 등등.
하지만 2년이 지난 지금은 차세대 시스템 플랫폼과 신기술 도입의 타당성, 새로운 아키텍처 설계, 아웃소싱 등 좀더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대화가 오간다. 이 같은 화두 앞에 CIO들은 실무 책임자 이상의 고민과 비전을 밝히고 있다.
금융권 CIO들이 변하고 있다. IT에 대한 전문적 지식을 토대로 현업을 관통하는 가교역을 수행하기 시작했다.
SC제일은행·농협·하나은행·교보생명·한국증권 등 은행·보험·증권 등 각 분야에서 녹록지 않은 경험과 전문적 지식을 갖춘 금융IT 전문가들이 업계의 오피니언 리더로 자리잡고 있다.
이들의 존재는 금융IT 시장을 겨냥한 IT서비스 업체나 솔루션 벤더들에 넘어야 할 산이기도 하지만 자사 제품 또는 서비스 장점을 충분히 이해시킬 경우 오히려 우군(友軍)이 될 수 있다.
이 같은 시대적 변화 앞에서 국민은행이 올해 들어 단행한 CIO 교체는 안타까운 시선을 불러왔다. 은행 내부의 전략적 인사정책에 누가 뭐랄 수도 없지만 부임 1년이 채 안 된 CIO의 교체 이유에 대해 은행 안팎에선 ‘팽(烹)’이라는 단어에 무게를 뒀다.
지난 2001년 이후 약 4년 동안 국민은행 전산정보그룹은 총 5명째 CIO를 맞았다. 이 기간은 국민은행이 차세대 시스템 프로젝트를 검토하고도 본격적인 실행을 늦춰온 시기에 해당한다. 누가 확신과 책임감을 갖고 그 같은 대형 프로젝트를 수행하겠는가.
IT전문가가 단김에 금융권 CIO가 될 수 없고 금융 전문가 역시 금융권 CIO가 될 수 없다. 결국 IT 트렌드에 대한 지식과 금융 현장의 경험이 적절한 시간의 흐름 속에 융합돼야 탄생한다.
금융IT의 전문성은 하루 아침에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더욱이 은행과 같은 대형 회사의 IT를 총괄하는 CIO는 최고 경영진에 IT투자의 배경과 효과를 설득할 수 있는 전략가의 마인드까지 요구받고 있다. 시대는 조직 인사 차원과 경력관리 차원에서 머무는 CIO를 더는 원치 않는다.
이정환기자@전자신문, victo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