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방송 컨버전스 시장에서 미국의 통신사업자(Telcos)와 케이블사업자(Cablecos)가 경쟁했다. 누가 이길까. 정답은 ‘구글’이다. 통신과 방송이 자신의 산업영역을 지키려고 애쓰는 동안 구글과 같은 콘텐츠사업자는 다양한 이용자의 요구에 민첩하게 반응하면서 영역을 확대해 가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 MIT대학의 저명한 미래학자인 네그로폰테 교수는 지난 2004년에 이미 구글이 훌륭한 대체 미디어가 될 것이라고 예견한 바 있다.
인터넷 이용자는 이제 스스로 콘텐츠를 창조·관리·유통시킴으로써 자신만의 가치를 극대화하기를 희망하고 있다. 디지털 컨버전스 시대의 성패는 이용자로 하여금 콘텐츠를 얼마나 더 빨리, 손쉽게 이용하게 해주는지에 달려 있다.
우리나라 GDP에서 IT가 차지하는 비중은 2005년 약 15%, IT산업의 경제성장 기여율도 지난 5년간 연평균 39%를 차지하는 등 IT는 국가경제를 이끄는 원동력이 돼왔다. 브로드밴드 확산에 힘입어 총거래규모에서 전자상거래가 차지하는 비중은 2000년 4.5%에서 2004년 19.3%까지 확대됐다. 또 이동전화 급성장에 힘입어 모바일 콘텐츠 시장은 2004년 2조8300억원 규모를 기록했으며 오는 2008년까지 연평균 28.3%의 성장률을 보이면서 6조원 이상으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통신사업자가 초고속인터넷과 이동통신 보급으로 디지털 생태계를 조성하고 이를 통해 장비·SW·콘텐츠 분야 사업자가 동반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왔기에 가능했다. 디지털 생태계란 디지털 환경을 구성하는 각 주체가 상호 작용하는 과정에서 동반 성장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생태계 번영을 가져올 수 있다는 개념이다. 인터넷은 대표적인 디지털 생태계며, 최근 정보통신부가 제시한 ‘모바일특구(MSD:Mobile Special District)’도 새로운 디지털 생태계에 해당한다.
미국의 사례에서 보듯 통신·방송 컨버전스 시장에서 양 산업계가 동반 성장하기 위해서는 디지털 콘텐츠 확산을 통해 공동의 파이를 키워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우수한 통신 플랫폼과 방송 콘텐츠 결합을 통한 선의의 경쟁과 상호협력이 필요하다. ‘원소스 멀티유스’가 가능한 디지털 콘텐츠 특성상 IP미디어 같은 새로운 서비스는 이용자가 더욱 쉽게 콘텐츠에 접근할 수 있게 해 구글의 검색광고 서비스 등 새롭고 다양한 비즈니스 기회를 만들 것이다.
다음으로는 디지털 콘텐츠 확산을 촉진하기 위한 정책적 노력이 필요하다. 일본에서는 디지털 콘텐츠의 원활한 유통을 위해 IP미디어의 방송 콘텐츠에 대해서는 저작권법 적용을 면제해 주는 법안이 국회 통과를 앞두고 있다. 그 배경에는 디지털 콘텐츠가 중요한 국가자원이라는 판단과 정보재로서 이용도에 따라 가치가 기하급수적으로 커지는 네트워크 효과를 지닌 상품이라는 인식이 자리잡고 있다.
끝으로 신규 서비스에 대한 규제의 유연성을 확보해야 한다. 케이블모뎀 방식의 초고속인터넷, 인터넷전화(VoIP), 메신저폰 등은 모두 시장에서 먼저 선을 보였다. VoIP 같은 일부 서비스에 대해서는 사후규제 움직임이 있지만 이는 소비자 보호 차원에서 제한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미래에는 새로 대두되는 이용자의 요구와 급격히 발전하는 IT기술이 창조적으로 결합됨으로써 기존에는 없던 새로운 시장이 지속적으로 창출될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규제도 이제는 산업육성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규제가 디지털 생태계의 순환을 막아서는 안 된다.
디지털 생태계의 궁극적인 목적은 ‘지속 가능한 성장’이다. 현재와 같은 디지털 컨버전스 환경에서는 타 생태계 영역의 침범이 불가피할 수도 있다. 그러나 조금만 미래지향적인 시각을 가지면 통신과 방송은 공동 운명체임을 알 수 있다. 부분의 합이 전체보다 커진다는 자연 생태계의 법칙을 다시 한 번 되새겨야 할 때다.
남중수 KT 사장 ceo@k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