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LG전자 등 대기업이 중소협력사에 부품 납품가 두자릿수 인하를 요구하고 나섰다고 한다. 그것도 매년 통상적으로 요구한 납품가 인하율에 비해 두배 가까이 높은 수치라는 것이다. 게다가 작년에 분기별로 이루어지던 가격 조정을 올해에는 상시조정에 나서겠다고 제안했다는 보도다.
최근 환율 하락 등 경영여건 악화에 따라 대기업이 비상 경영체제에 돌입한 것을 감안하면 이미 짐작했던 일이지만 중소부품 업체로서는 여간 걱정이 아닐 수 없다. 올해는 예년과 상황이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고원화·고유가·고원자재가 3중고로 경영난에 처해 있는 상태여서 납품가 인하가 생존 기반마저 흔들 것이라는 우려를 제기하는 중소기업이 있을 정도다. 대기업에 납품하는 중소기업 경영자에게서 ‘죽지 않을 만큼만 남겨준다’는 말을 듣기란 어렵지 않다. 그러다 보니 수십년 부품소재산업 육성을 외쳐왔지만 허사였다.
물론 대기업의 납품가 인하 요구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경영여건 변화로 순이익이 눈에 띄게 줄 것으로 예상되는데다 세계 전자시장에서 가격경쟁에 밀리지 않기 위한 대비책을 고민해오고 있음을 알고 있다. 그렇다 해도 납품업체에 떠넘기는 방식으로 이익을 지키려 한다면 도덕적으로 옳지 못할 뿐더러, 싹터 가는 재계의 ‘상생 경영’ 다짐에 찬물을 끼얹는 일이다. 이제는 ‘납품업체 쥐어짜기’에서 벗어나, 엔화 강세 시절에 일본 업체가 했던 것처럼 자체 비용을 줄이고 부품업체와 함께 생산성 향상으로 난국을 뚫는 쪽에 무게를 둘 때다.
올해 전자산업 대내외 환경이 크게 달라지고 있다. 우선 전방산업의 수출 증가세와 수익성이 둔화되고 있다. 원화가치 급등, 고유가세 지속, 원자재가 폭등으로 지난 1월 디지털전자 수출 증가세가 한자릿수로 떨어졌다. 수출주도형 전방산업체의 수익성도 지난해 4분기를 기점으로 크게 하락하기 시작했다. 세자릿수 환율로 가격경쟁력 약화는 물론이고 채산성이 마이너스로 돌아설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다. 이 같은 대내외 환경 악화가 대기업의 대대적 납품가 인하요구로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대기업이나 중소기업이나 대폭 가격인하를 스스로 흡수할 수 있는 완충력이 별로 없다는 점이다. 대기업은 원화절상과 수익성 악화 예고로 어려움에 직면해 있으며 중소기업은 지난해부터 일기 시작한 원자재가 폭등으로 이미 채산성이 나빠질대로 나빠졌다. 더욱이 원화절상으로 중소기업은 부품소재 가격경쟁력 약화에 직면했고 대기업은 수입품 대체 유혹을 받고 있다.
부품소재산업 육성 정책의 목표는 사실 이 같은 대내외 여건 악화에 대비하는 것이었다. 혁신형 중소기업 육성과 대·중소 기업 상생 협력을 바탕으로 중소기업 스스로 가격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그 가운데 하나다. 글로벌화된 부품소재 중핵기업을 발굴해 지나친 국내 전방산업 의존도를 줄여 안전성을 확보하자는 게 두번째다.
부품소재산업 정책의 승패는 올해에 맞닥뜨린 난관을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달려 있다. 정부는 부품소재산업 육성의 기조가 흔들리지 않도록 하루빨리 대기업, 중소기업과 나빠진 환경에 대응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그렇다고 임의적인 가격조정으로 시장개입을 하라는 뜻은 아니다. 대내외 환경변화가 대기업의 전방산업과 중소기업의 부품소재산업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또 미칠 것인지, 정부가 앞장서 개선할 수 있는 환경과 제도는 무엇인지를 점검해보아야 한다. 또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피해를 적절히 분담해 서로 윈윈할 수 있는 협상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