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형!
K형과 함께 일한 지도 벌써 3년이 다 되어 갑니다. 척박한 소프트웨어 산업을 일구겠다는 열정으로 뛰어든 게 엊그제 같은데 말이죠. 그동안 K형과 같은 대기업은 물론이고 중소기업들 덕분에 이제 소프트웨어 산업도 미래 한국을 짊어질 어엿한 청년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K형, 예나 지금이나 제 마음 한 구석을 짓누르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상생(相生)입니다. 늘 고민하는 문제겠지만 K형이나 내겐 늘 어려운 문제입니다. 하루아침에 해결될 수 있는 것도 아니고요.
K형, 영화 ‘대부’에 “친구들과 가까이 지내되, 적과는 더욱 가까이 지내라”는 대사가 있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적과 동침도 해야 된다는 얘기죠. 더군다나 컨버전스 시대에는 ‘나홀로 성공’이 아니라 ‘더불어 성공’이 생존전략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습니다. 소니와 도시바가 반도체 제조기술에서 공동개발을 추진하는 것이 그 예입니다.
얼마 전에는 현대자동차와 삼성전자가 공동마케팅을 진행하는 것을 신문에서 읽었습니다. 박수가 절로 나오더군요. ‘외국기업 제품을 쓸지언정 경쟁사 제품은 쓰지 않겠다’는 상쟁의 마음에서 벗어나 성숙해 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두 기업이 판매뿐만 아니라 기술 분야까지 협력한다면 시너지 효과는 더욱 크겠죠. 내가 잘하는 것만 하고 핵심역량이 아닌 것을 사줄 때 기업은 경쟁력을 쌓게 됩니다. 또 산업의 경쟁력도 함께 올라가는 것이죠.
K형, 이제 우리도 상생 모델을 만들어야 합니다. GM이 해외시장에 진출하면 IBM이 시스템을 공급합니다. 델은 윈도가 탑재된 PC를 판매하죠. 우리는 왜 그러지 못할까요? 기술이 없어서일까요? 인력이 부족해서일까요? 아닙니다. 바로 전문화돼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대기업은 너무나 여러 산업에 손을 댔습니다. 그리고 K형이 다른 그룹사에 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힘든 환경이었습니다. 온라인 트레이딩만 하더라도 우리가 외국보다 한 발 앞서 서비스를 했습니다.
하지만 IT서비스 업체는 자기 그룹 소속의 증권사 외에 납품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레퍼런스와 기술력을 쌓기 힘들었죠. 그러다 보니 해외로 나가기도 힘들고요. 기업이나 산업 측면에서 얼마나 비효율적입니까? 이것 저것 다 하다가는 상생은커녕 함께 사지로 갈 것입니다. 소프트웨어 산업의 경쟁력도 기대할 수 없고요. 상생을 외치기 전에 ‘자기 자신이 전문화돼 있는지’ ‘전문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지’ 고민해야 합니다.
K형, 전문화만이 살 길입니다. 그래야지 아키텍트와 같은 고급인력을 얻을 수 있고 마케팅과 프로세스가 더욱 효율화됩니다. 전문화만이 K형이 살고 우리 소프트웨어 산업이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인 것입니다. 그리고 상생도 가능합니다. 피터 드러커도 기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을 하라고 했습니다. K형처럼 큰 기업은 지금의 주력산업을 중심으로 국제 경쟁력을 가지는 IT서비스 기업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최근 화두가 되는 IT서비스는 IT의 기본지식 위에 사업영역의 전문적 경험이 결합된 것입니다. 다행히 와이브로나 DMB 등 새롭게 열리는 시장에서 우리 기업이 한 발 앞서 있습니다. 모든 것을 다 하려 하지 말고 각자 장점을 가진 특화 분야에 집중해야 합니다. 자기 영역이 아닌 것은 전문기업 제품을 써 주면 됩니다. 그래야지 동반 성장할 수 있고 제2, 제3의 대기업이 나옵니다. 그리고 글로벌 협업도 가능합니다.
이제 경제 환경이 성숙된만큼 우리 소프트웨어 산업에서도 스스로 업종의 전문화를 꾀해야 합니다. 좁은 시장에서 제로섬 게임을 해서는 안 됩니다.
K형! 지금 상생과 생존을 고민한다면 어떻게 전문화할 것인지 먼저 고민하십시오.
◆고현진(한국소프트웨어진흥원장) hjko@software.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