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정보보호정책도 수요자 위주로

 최근 사태를 보면 우리의 정보보호 정책이 실효성을 잃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인기 게임인 리니지에서 명의가 도용된 사건으로 온 국민이 홍역을 앓고 있다. 검찰 수사 결과 한국인도 아닌 중국인에 의해 최대 122만개에 달하는 우리의 이름과 주민번호가 불법적인 아이템 거래에 이용됐다고 하니 정말 어처구니가 없다. 해당업체가 이를 알고도 방치했다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으니 온라인게임 종주국이 아니라 개인정보 유출 으뜸국이라는 오명을 떨치게 될 지경이다.

 정부가 4월에 있을 판교 청약을 인터넷으로만 받겠다 해 공인인증서 대란이 우려되고 있다. 인터넷 청약시 금융거래에 의무화돼 있는 공인인증서가 필요하다.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인증서를 받으려다 지난번 대학입시 원서 인터넷 접수때처럼 서버가 다운되는 사태가 일어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같은 사태 속에서도 인터넷 못지않게 널리 보급되고 활용되고 있는 무선인터넷에서는 도입된 지 2년이나 지난 공인인증서가 활용조차 안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통신사업자들은 사용불편에 따른 이용자 감소를, 금감원에서는 시스템 불안정성에 따르는 책임을 우려해 적극 나서지 않는다고 한다. 일명 대포 폰이 사회문제가 되고 휴대폰을 이용한 금융거래나 증권거래가 일상화되고 있지만 정보보호에 필요한 무선공인인증서는 의무화가 안 됐다는 이유만으로 정책당국이나 업계, 사용자 모두로부터 외면당하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문제의 발생 원인은 그동안 정보보호 정책이 지나치게 기술개발과 산업발전, 업체 간 공정경쟁에 초점을 맞춘 공급자 위주로 치우쳐 왔기 때문이다. 리니지 명의도용의 출발점도 따지고 보면 실명인증에 있다. 사실 가장 좋은 개인정보 보호수단은 개인의 신상정보가 전혀 필요없는 비실명 인증이다. 하지만 비실명 인증은 업체들 간 과열경쟁으로 유령가입자가 양산되는 바람에 퇴출당했다.

 실명인증에 따른 신상정보 유출이 문제되자 일각에서는 금융과 증권 거래로 제한돼 있는 공인인증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으나 이 역시 공급자 위주의 시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공인인증은 정보보호 수단으로는 좋을지 모르나 범위확대시 불편함과 사생활 침해를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인터넷 이용시 공인인증 범위를 확대하는 것은 마치 슈퍼에서 아이스크림을 사먹을 때에도 인감증명서를 내라는 소리나 마찬가지다. 최근에는 개인신상정보가 담겨 있는 실명인증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주민번호 대체수단이 거론되고는 있는 등 긍정적인 변화가 일고 있기는 하다. 신상정보 없이 실명이나 다름없는 인증수단이 있다면 더할나위 없겠지만 현실적으로 주민번호와 같은 실효성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게 사실이다.

 주민번호 대체 수단의 필요성 주장과 충격적인 명의도용 사태를 계기로 정보보호 정책을 사용자 위주로 전환해야 한다. 유선이든 무선이든 수요자들이 스스로 실명인증에 따르는 위험성을 인지하고 또 문제발생시 대처 요령을 터득할 수 있는 교육환경과 제도 마련이 시급하다. 공인인증에 필요한 절차나 사용요령을 익혀 이에 대한 거부감을 줄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장기적인 안목으로 수요자들과 함께 나아가는 단계적 정책 집행으로 판교의 인터넷 청약처럼 사용자들의 불편을 가능한 한 초래하지 않아야 한다. 무선인터넷에서 제2의 리니지 명의도용 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인식확산을 위한 홍보와 대책 마련을 서둘러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정보보호 정책의 무게가 그동안의 기술개발이나 공정 경쟁 위주에서 탈피해 실명인증이나 공인인증에 대한 인식제고와 편리하고 효율적인 사용환경 조성 등에 실려야 하고 자금도 집중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