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칼럼]진정한 소프트강국이 되려면

 도요타는 21세기 들어 독특한 경영방식으로 전 세계 기업의 벤치마킹 대상이 되었다. 부단한 개선을 통한 철저한 품질관리, 재고축소, 고객 및 사원 존중 문화는 도요타를 세계 최강의 자동차 회사로 올려놓았다. 도요타의 명성은 좀처럼 식을줄 모른다.

 21세기 일본의 자존심인 도요타는 20세기 일본의 자부심이었던 소니와 공통점이 있지만 차이점도 많다. 소니는 매우 일본적이면서도 가장 서구지향적이었다. 이율배반적이라 할 수 있겠지만 소니는 알다시피 ‘모방을 통한 창조의 귀재’였다. 오디오를 응용한 워크맨, 방송용 비디오를 활용한 가정용 VHS 비디오, 브라운관을 업그레이드한 TV 등으로 명성을 날렸다. 하지만 소니가 추구한 문화는 탈 일본이었다. 서구식 경영을 도입하고 CEO까지 서구인으로 영입했으며 소프트 사업 강화에 매달렸다.

 반면 도요타는 소니와 달리 첫째도, 둘째도 일본을 지향했다. 소니가 기업을 체질화되지 않은 서구문화와 접목하려 시행착오를 겪는 동안 도요타는 가장 자신 있는 일본 문화를 세계적인 자랑거리로 새롭게 창조해냈다. 소니가 탈 일본으로 서구인의 비난을 막아주는 방패였다면 도요타는 일본적인 게 최고라는 자존심을 되찾아준 셈이다.

 도요타는 과거 일본기업과 달리 전 세계에서 찾아오는 손님 누구에게나 벤치마킹을 할 수 있도록 공장 문을 활짝 열어주었다. 여느 일본기업에서는 상상조차 하기 힘든 일이다. 왜 그랬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눈에 보이지 않는 소프트 경쟁력에 대한 자신감 때문이다. “도요타 방식은 벤치마킹을 한다고 저절로 터득되는 게 아닙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노하우에 도요타 방식의 비결이 숨어있기 때문입니다.” 노하우 전수에 거리낌없는 태도를 궁금해 하는 내게 도요타의 한 사람이 해준 말이다. 이 말에는 일본·일본인·일본문화를 바탕으로 하지 않은 도요타 방식은 자신들만큼 효과를 내기가 어렵다는 뜻이 담겨 있다. 세계적인 영화제에서 수상한 서편제를 두고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고 평한 말도 바로 도요타 사람의 말과 일맥상통한다.

 한국은 바야흐로 소프트웨어 강국을 꿈꾸고 있다. 세계 최강의 하드웨어 인프라를 바탕으로 소프트웨어(SW)·디지털콘텐츠·드라마·영화 등을 세계적인 상품으로 가꾸려 한다. 자금과 인력·제도 등 입체적인 지원 청사진도 나오고 있다. 정말 반가운 일이다. 이미 아시아권에서는 ‘한류우드’가 할리우드를 대신할만큼 한국의 SW는 입지를 다지고 있다.

 그렇지만 열쇠는 막대한 지원이 아니라 진정 한국만이 지닌 강점을 뒷받침할 수 있는 그 무엇이따라야 한다는 사실이다. SW만 하더라도 우리 기술이 절대 모자라는 게 아니지만 수십년 동안 기를 펴지 못하고 있다. 한국의 경영관리 SW는 세계적인 모범이 될 한국적 경영문화가 그 속에 녹아들어야 세계 최고가 될 수 있다. 서구의 경영관리 방식 틀에 우리의 기술만 부어넣어서는 어렵다. 온라인 게임은 우리의 앞선 인프라와 문화, 노하우가 있었기에 세계 최강이 될 수 있었다. 소니의 전철에서 보듯 남의 것을 베끼기만 해서는 결코 세계 최고가 되기 힘들다.

 최근 노 대통령의 아프리카 순방중에 작지만 매우 상징적인 사건이 하나 있었다. 전력IT 기술을 제공하는 대신 석유 시추권을 확보한 외교가 그것이다. 한국은 석유가 전무하기 때문에 전력산업 효율성과 경쟁력은 가히 세계 제일이다. 석유가 넉넉한 곳과는 비용 개념이 천지차기 때문이다. 전력산업은 이처럼 세계 최강의 노하우가 스며있는 곳이어서 우수한 IT기술이 더해지고 빼어난 인프라까지 뒷받침된다면 대적할 자가 없을 것이다. 세계 최강 IT의 희망은 바로 전력산업에서처럼 우리만의 노하우가 숨쉬는 분야에 있는 것이다. SW 강국을 희망하는 우리 모두가 반드시 유념해야 할 점이다.

◆유성호논설위원@전자신문, shy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