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백척간두 러플린

박희범

 러플린 KAIST 총장이 임기 연장을 놓고 백척간두에 내몰렸다. KAIST 이사회(이사장 임관 삼성종합기술원 회장)가 로버트 러플린 총장의 업적 평가 5인 소위원회를 가동중인 가운데 KAIST교수협의회가 15일 ‘총장 직무수행에 관한 설문조사’ 결과를 전격 공개, 지난달에 이어 총장·교수 간 대립이 2라운드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이날 윤춘섭 교수협의회장은 기자 간담회에서 “지난번 설문 결과 미공개는 총장의 거취와 KAIST에 미칠 영향을 고려한 것이었지만 이제는 시기상 총장 연임 결정 시기가 가까운데다 교수들로부터 설문결과 공개 압력이 있어 불가피했다”고 말했다.

 특히 지난달 사태에서 러플린 총장이 내놓았던 ‘교수협의회가 설문 결과를 공개할 경우 교수 개별 평가 결과도 공개할 것이며, 이미 교수협과 협의해 설문결과를 공개하지 않기로 합의했다”고 말한 것에 대해 윤 회장은 “그런 적 없다”고 잘라 말하며 향후 강경 대응에 나설 것임을 은연중에 내비쳤다.

 윤 회장은 또 KAIST 이사회 5인 소위원회에 교수 대표로 포함돼 있는데다 “교수의견을 이사회에 반영하는 것이 교수협의회의 목적”이라고 자신의 역할을 명확히 밝혀 이사회 소위 활동 결과에도 영향력을 행사할 소신을 드러내 파장이 만만치 않을 조짐이다.

 이래저래 러플린 총장을 압박하는 분위기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러플린 총장의 응원군이던 과기부마저 이번 사태에 중립적(?) 태도를 취하고 있다. 이사회의 결정을 지켜보며 오는 4월 15일까지 총장 거취를 최종 결정하겠다는 의견을 나타내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총대를 이사회가 떠멘 형국이다.

 일부 교수가 내부 메일로 교수들의 자중을 당부하는 글을 보내는 등 러플린에 힘을 싣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메일을 보낸 J 교수는 ‘총장의 재계약을 막기 위해 교수협의회가 앞장서는 것은 좋아 보이지 않는다’거나 ‘교수들이 교수 평가 때문에 러플린 총장이 싫다고 하는데, 그건 아닌 것 같다’는 견해도 나타냈다.

 그러나 러플린 총장의 입지는 여전히 아슬아슬하다. 역량을 갖고 있는만큼 KAIST가 총장과 교수 간 내부 분란이야 이겨 내겠지만 어쨌든 상처는 쉽게 나을 것 같지 않다.

경제과학부=박희범기자@전자신문, hbpa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