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기관이 연구개발(R&D)용으로 도입한 연구장비나 기자재 등에 대한 정부 차원의 통합관리가 미흡하다고 한다. 막대한 예산을 들여 도입한 연구장비와 기자재의 공동 활용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1회 사용에 그친다면 예산 낭비라고 할 수 있다. 안타깝게도 산업자원부와 정보통신부, 중소기업청 등 19개 부처·청 산하 106개 연구과제 관리기관도 장비 관리를 제각각 하고 있다고 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막대한 예산을 들여 도입한 연구장비가 사업이 끝나면 다른 연구기관에서 사용하지 못한 채 폐기 또는 방치하는 사례가 많다는 것이다.
한국기초과학자원연구원(기초과학연)이 지난해 말 국내 401개 대학 및 연구기관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이들 기관이 보유한 연구장비는 모두 12만4591종이며 금액만도 5조391억원에 달한다. 하지만 이들 연구장비는 연구과제 관리기관별로 데이터베이스(DB)가 별도 관리되고 있다. 그러다 보니 기관간 DB 공유가 거의 이뤄질 수 없다. 다만 기초과학연이 지난 2004년 연구개발 시설·장비 정보 등록 및 DB구축 주관기관으로 지정돼 범 부처 차원의 연구장비 정보수집 사업을 시행하고 있을 뿐이다. 기초과학연이 보유한 연구장비 DB 구축률도 겨우 30%선에 그친다니 나머지 장비는 통합관리가 되지 않는 셈이다. 연구장비 DB가 구축돼 있지 않으면 대학이나 연구소 등 기관별로 보유한 국가 프로젝트용 연구장비의 공동 활용은 기대할 수 없는 일이다. 어느 기관에 어떤 연구장비나 기자재가 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기초과학연이 밝힌 2004년 말 연구장비 공동 활용 투입 장비는 총 1만7030종이다. 이는 전체(12만4591종)의 13.7%에 불과하다. 나머지 86.3%의 장비는 과제 종료 후 다른 연구개발 과제에 사용되지 못하는 셈이다. 막대한 예산을 들여 어렵사리 도입한 연구장비를 충분히 활용 못한다면 국가적 손실이다. 또 연구개발에 차질을 줄 수 있다.
정부는 과학기술 중심사회 구현을 위해 과학기술혁신본부를 발족해 각종 연구개발비 사용의 효율성을 극대화하고 있다. 과기정책이 국가발전의 원동력이고 IT가 경제 발전의 견인차라는 요즘 연구장비의 공동 활용이 미진하다면 과학기술 발전과 IT비전 실천에 차질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잘 아는 것처럼 우리 경제가 날로 발전하는 것도, 미래 성장동력을 육성하는 것도 과학기술이 그 원동력이다. 미래성장산업에서 우리가 주도권을 행사하려면 과학기술 인력 양성과 더불어 연구개발이 활발하게 이뤄져야 한다.
그런 점에서 정부는 앞으로 각급 연구소나 대학 등이 보유한 전체 장비의 활용도를 높일 수 있는 개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과학기술부가 사업이 종료된 48개 우수공학연구센터(ERC) 수행과제에 사용된 장비 및 기자재의 관리 강화 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고 하지만 이를 모든 연구기관으로 확대하고 통합해야 한다.
체계적인 연구장비 관리를 위해서는 구입단계에서부터 사용 그리고 공동 활용 이후 폐기까지 전 과정을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이런 시스템 구축은 예산의 효율적인 사용이나 차질없는 연구개발 진행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정부가 이런 시스템을 구축해 연구장비를 통합 관리하면 장비 이중 도입이나 1회성 사용 등 낭비 요인을 사전에 막을 수 있다. 선택과 집중을 통해 필요한 연구장비를 더 구입할 수 있다.
국가연구장비 발주기관인 조달청의 ‘나라장터’와 과기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과학기술종합정보시스템(NTIS)도 서둘러 연계해야 한다. 갈수록 치열해지는 기술 세계에서 연구과제 관리기관이 적극적으로 통합 시스템 구축에 참여해 연구기자재 공동 활용도를 높이도록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