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덕칼럼]시작할 때와 물러날 때

 요즘 관가는 가히 인사철이라고 할 만하다. 연초 5개 부처 장관 개각에 이어 이달 초 4개 부처 장관이 “지방선거 츨마”를 위해 사퇴했다. 당연히 새 장관과 공석인 차관급 인사가 뒤를 이었다. 다음 순서는 해당 부내의 후속 인사라고 할 수 있다. 떠나는 장관과 오는 장관 내정자의 표정은 확연히 차이가 난다. 떠나는 장관은 아쉽고 미련이 남는 표정이다. 하지만 이미 흘러간 물이다. 그러니 누구나 그 자리에 있을 때 잘해야 한다. 장관 내정자는 의욕이 넘친다. 포부도 크다. 그러나 이도 세월이 지나야 성적을 매길 수 있다. 당장은 국회가 장관 내정자에 대한 인사 청문회를 도입하면서 새 장관 취임기간이 늦어지는 게 문제다. 사전에 부처 업무를 파악하고 정책 구상을 한다는 장점도 있지만 공무원은 ‘한 지붕 아래 두 시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꼴이다. “되는 일도 없고 안되는 일도 없다”는 소리도 들린다. 정책 진도도 안 나간다. 게다가 후속 인사와 관련한 유언비어도 나돈다. 관련 부처 분위기는 마치 시골 장터 같이 어수선하다. 바람직한 현상은 아니다. 더욱이 최근에 ‘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 萬人之上)’이라는 국무총리조차 골프 파문으로 사퇴했다. 내각을 총괄할 총리자리가 공석이니 온통 후임 총리 하마평에만 촉각이 곤두서 있다.

장관이 바뀌면 그 부서의 후속 인사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새 장관은 기존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면서도 자신이 역점을 두고 싶은 분야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자리건 인사는 적재적소(適材適所)여야 한다. 사람을 잘 쓰면 성공한 장관이 될 수 있다. 이 점은 부서장인 인사권자가 각별히 유념해야 한다. 지연과 혈연, 학연 등을 배제하고 사람 자체만 보고 쓰임새를 판단해야 한다. 일단 발탁했으면 믿고 그가 소신껏 일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 그 이후는 당사자의 마음가짐에 달렸다. 지난 21일 3년 23일이란 최장수 정보통신부 장관직을 마감한 진대제 전 장관은 대기업 CEO에서 장관으로 일한 것을 ‘공익근무’에 비유했다. 사익이 아닌 공공의 이익을 위해 일하는 공익(公益)이라는 의미다. 조선 시대 임금들은 과거시험에서 현안에 대해 물었다. 1507년 중종은 알성시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잘하는 정치란 무엇인가”라는 책문을 제시했다. 이에 권발이란 사람이 “사람의 마음은 온갖 조화의 근본이므로 마음을 보존해 근본을 세우고 도(道)를 응용해 정치에 이용한다면 시작도 잘하고 끝을 잘 맺는 데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고 답했다. 권발은 “쉬울 때 어려움을 생각하며 시작할 때 마칠 때는 생각하면 시작과 끝이 같다”고 말했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말은 쉬워도 실천은 어렵다. 공자도 사람의 마음을 “붙잡으면 그대로 있지만 놓으면 없어지고 시도 때도 없이 드나들어 가는 곳을 알 수 없다”고 말했다. 그만큼 마음 잡기가 어렵다. 하지만 자신에 대한 경계를 철저히 하면 같은 마음을 유지할 수 있다.

경행록에도 “위정(爲政)의 요체는 공정함과 청빈”이라고 했다. 지금까지 수많은 공직자가 역사의 수레바퀴에 족적을 남겼다. 이 중에 영겁을 넘어 우리에게 교훈을 주는 이는 별로 많지 않다.

 조선 시대 청백리도 120여명뿐이다. 이들은 공정함과 청빈함을 지켰다. 반면 자신에게는 엄격했다. 시도 때도 없이 까불거리는 자신의 마음을 꼭 잡은 이들이 바로 청백리다. 우리의 현안인 IT강국도, 기술중심 사회도, 국민소득 2만달러도 시작과 끝이 같아야 달성할 수 있다. 시작할 때는 물러날 때를, 기쁠 때는 슬플 때를 생각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새 자리에 앉는 이들이 명심해야 할 점이다.

◆이현덕 주간@전자신문, hd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