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즘]아리랑과 사무라이

 얼마 전 호주에 있는 한 독자에게서 메일을 받았다. 독자는 최근 호주에서 영화 ‘게이샤의 추억’이 히트하면서 일본 노래가 각광을 받고 있다는 말과 함께 한 음반 표지와 음악 다운로드 사이트 화면을 보내왔다. ‘일본 게이샤의 전통음악(Traditional Music of the Japanese Geisha)’이라는 앨범표지와 ‘http://www.audiolunchbox.com’이라는 음원 사이트였다.

앨범과 사이트 캡처 화면을 살펴보다가 충격을 받았다. 우리 노래 ‘아리랑’이 그 속에 들어 있기 때문이었다. ‘아리랑은 일본 기생(게이샤) 음악’이라는 설명과 함께. 한 곡당 0.99달러에 음악을 다운로드할 수는 음원사이트에도 아리랑은 일본 기생들이 불렀던 노래일 뿐이었다. 그나마 정작 아리랑이라는 이름이 붙은 데서는 일본 노래가, 일본 노래 ‘Tancha Meh’에는 아리랑이 나오는 어처구니 없는 일까지 벌어졌다. 더 놀라운 것은 이 앨범의 스물한 번째 트랙에 수록된 ‘사무라이송’이었다. 사무라이송이라는 노래를 미리 들어보니 우리 나라 여성이 부른 아리랑이었다.

 명성황후를 시해하고, 임진왜란을 일으킨, 을사조약으로 우리나라를 침탈한 그 무서운 ‘사무라이’가 부르는 노래가 ‘아리랑’이라니. 2002년 월드컵 때 광화문에서 목이 터져라 불렀던 민족의 노래 ‘아리랑’이 ‘사무라이송’으로 버젓이 팔리고 있었다. 다른 앨범 판매사이트에서도 이 같은 일은 여전했다. 앨범 한장당 가격은 5.97달러였다. 제작처는 ‘Legacy International’로 2003년에 만들어졌다가 최근 게이샤의 추억이 히트하면서 다시 주목받기 시작한 앨범이었다.

 이쯤 되고 보니 화살은 정부에게 돌아간다. 아리랑이 사무라이송으로 둔갑하는 수준이라면 우리가 자랑하는 한류 수준도 짐작이 간다. 애국가보다 더 많이 부르는 ‘아리랑’을 일본 기생 노래로 왜곡시키는 것 하나 파악하지 못한다면, 중국의 짝퉁 제품 판매, 세계적인 한류스타의 저작권 침해는 지켜지기 어렵다.

 우리나라는 호주의 네번째 큰 수출국이자 교역국이다. 그러나 우리기업의 가전제품과 자동차가 매장에서 불티나게 팔리는 동안, 호주에서 아리랑은 일본 기생노래고, 아리랑의 제목은 아직도 ‘사무라이송’이다. 이쯤 되고 보면 정부의 한류 자랑에 감정이 생겨날 만하다.

디지털산업부·김상룡차장 srkim@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