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중국산 에어컨](https://img.etnews.com/photonews/0603/060328023112b.jpg)
작년 여름 연일 폭염이 전국을 휘덮은 때에 중국 하이얼사의 에어컨은 가격 경쟁력을 무기로 우리나라 시장을 처음 노크해 연착륙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에어컨 생산 세계 1등 기업을 가진 우리의 위치를 조만간 중국이라는 거대한 공룡에게 내주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세계 가정용 에어컨 생산량을 보면 LG전자를 필두로 미디어·그리·마쓰시타·하이얼 등 5위권에 중국 업체가 무려 3곳이나 포진돼 있다. 우리나라는 이제 양으로는 세계 1위가 아니다. 막대한 생산량으로 인해 중국 에어컨 제조업체는 재고 처리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원자재가격은 올랐지만 제품가격은 하락하는 기현상도 벌어지고 있다. 우리나라 업체들이 중국으로 날아가 서로 OEM을 요구하며 제품가격을 낮추고 있는 상황에서 올 여름은 어느 중국 회사의 제품이 우리 시장에 나올지 궁금하다.
그러면 과연 중국산 에어컨은 가격만 싼 제품만 있는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니다. 우리나라 에어컨 생산업체들이 고부가가치를 내세워 선보이고 있는 시스템 에어컨, 히트펌프 냉난방기도 더는 예외일 수 없다.
시스템 에어컨을 예로 들어보자. 우리나라에서 시스템 에어컨이라고 불리는 이 제품군은 원래 VRF라고 하는 에어컨 제품의 한국 시장 내 별칭이다. 이 제품은 하나의 실외기에 단배관으로 여러 타입의 실내기가 붙어서 중소형 빌딩의 새로운 냉난방 시스템으로 사용자의 편리함과 에너지 절약으로 인해 시장에서 새롭게 각광받고 있다.
원래 이 제품군은 일본이 원천기술을 갖고 있으며 다이킨·도시바-캐리어·산요·미쓰비시 등 많은 일본 업체가 자신의 기술을 과시하며 새로운 제품을 쏟아내고 있다. 여기에 우리나라 제조업체들이 도전장을 내밀며 고부가가치 시장을 빼앗기 위한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형국이다.
여기에 새로이 나타난 세력이 중국 제조사들이다. 우리가 밤낮으로 연구하며 개발에 여념이 없을 때 중국은 시장을 무기로 일본 업체와 합작 형태로 제조사를 설립, 일본 원천기술을 그대로 배우고 답습해 새로운 제품을 만들어내고 있다.
하이얼은 50마력의 DC인버터 기술을 채택한 MRV III를 만들었고, 미디어는 업계 처음으로 64마력 실외기(MDV III)를 지난해 생산, 수출하고 있다. 64마력의 실외기 용량은 원천기술을 가진 도시바의 48마력을 능가하는 것으로 청출어람의 대표적인 예다. 그리의 경우 GMV라는 상표로 VRF 시장을 노크하는가 하면, 스팀 스프레이 시스템을 적용한 새로운 기술로 영하 25℃에서도 난방이 되는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일본 제조업체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가격 경쟁이 안 되던 시기는 지났다. 많은 일본 제조업체가 공장을 중국으로 옮겨 현지 생산을 하고 있는 것이다. 몇몇 업체는 여전히 일본 현지에서 생산하고 있지만 히타치·미쓰비시·산요 등은 현지 중국 공장에서 생산 수출하고 있다. 가격 경쟁력 때문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일본 브랜드가 더는 ‘메이드 인 재팬’이 아니다. 아마도 ‘Made in China Designed by Japan’이 정확한 표현일 게다. 기술뿐 아니라 가격에 밀리면 우리는 시스템 에어컨 부문에서 설 자리가 없게 된다.
물론 시스템 에어컨이 제품가격만으로 평가될 품목은 아니다. 사전의 PLAN & SPEC 활동, 철저한 AS가 필요하다. 이것이 우리 기업들의 강점이지만 중국이 서비스 네트워크를 갖추고 기술력과 가격을 밀고 나온다면 후폭풍은 상상 이상일 수 있다.
소비자는 즐거워질 것이다. 기업들의 치열한 경쟁 뒤엔 좋은 제품을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격에 앞서 제품의 질과 기술을 따질 수 있는 잣대를 기업이 제공하고, 그 잣대에 따라 구입하는 현명한 소비자가 많아지면 좋겠다.
◆김민기 에프에이씨시스템 사장 micky@facsy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