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한국 IT기술 `넛크래커`신세

 한국이 미국·일본과 중국 사이에 낀 ‘넛크래커’ 신세로 전락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정보통신연구진흥원이 IT전문가를 대상으로 IT839사업 기술역량과 경쟁력을 조사한 결과, 지난해 말을 기준으로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육성중인 IT839사업 81개 세부 기술이 대부분 선진국에 비해 2∼4년 뒤떨어져 있다는 보도다. 지능형 서비스 로봇·기계부품 기술은 미국·일본·스위스보다 4년이나, 차세대 이동통신부품 기술은 일본에 비해 2년이나 기술격차가 나는 것으로 조사됐다. 각종 SW 기술에서는 3년 이상 뒤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그나마 휴대인터넷 등 5개 기술에서는 세계 최고수준이라니 다행이다.

 차세대 성장동력 사업에서 우리가 선발주자를 좀처럼 따라잡지 못한 채 오히려 중국의 추격을 허용하고 있다는 조사나 분석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국가과학기술위원회가 2003년 발표한 ‘기술수준 평가’에서 차세대 성장동력 10대 산업과 관련된 59개 핵심기술의 선진국과 격차는 4.2년이었다. 2004년 산업은행이 주요 산업별 거래업체를 상대로 조사해 발표한 결과에서도 일본의 기술수준은 한국보다 2.2년 앞서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보통신연구진흥원의 이번 조사결과와 비교해보면 지난 3년간 우리가 선진국과 기술격차를 줄이지 못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반면에 중국과 기술격차는 급속히 줄어들고 있다. 2004년 산자부가 5849개 업체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는 한국과 중국의 격차는 약 4년으로 2002년보다 0.7년이 축소된 것으로 나타났다. 또 같은 해 산업은행 발표에서는 중국과의 기술격차가 3.8년으로 줄었으며 올 초 산자부 발표에서는 1년에서 3년 정도로 격차가 더욱 좁아졌다. 지난 2003년 국가과학기술위원회의 기술수준 평가에서 5년 이내에 우리와 중국의 기술수준은 우열을 점치기가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과 맞아떨어지고 있는 셈이다.

 차세대 성장동력사업은 미·일 기술선진국과 제조강국으로 부상중인 중국 사이에서 넛크래커 신세를 면하기 위해 중국과의 기술격차를 벌리고 선진기술을 하루빨리 따라잡기 위한 것이 목적이었다. 2003년 국과위의 분석보고서 이후 차세대 성장동력사업이 본격 시행된만큼 그동안 어느 정도의 기술격차에 변화가 있어야 하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수차례의 조사결과를 놓고 보면 과연 우리가 차세대 성장동력 사업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지 불안해지지 않을 수 없다. 매번 조사결과에서 선진국과의 기술격차는 여전히 줄어들지 않고 중국과의 차이만 좁아지고 있을 뿐이다.

 더 늦기 전에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무엇이 문제인지 그 원인을 철저히 분석하고 적절한 대책을 하루 빨리 마련해야 한다. 차세대 성장동력사업에 좀처럼 진전이 없는 이유야 여러가지겠지만 그보다 앞서 우리가 그동안 지나치게 장밋빛 청사진에 매몰돼 있었지 않았는지부터 반성해보아야 한다. 중국이 세계 제조창으로 급부상하면서 제조업 공동화를 비롯한 국가적 위기가 예견되던 불과 4년 전과 지금을 비교해 보면 우리의 위기의식이 상당히 희석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차세대 성장동력사업 시행만으로 위험이 사라졌다는 안도감에 젖어있지 않나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다.

 지난 3년간 유례없는 수출호조에, 발등의 불인 내수침체 회복에 정신을 빼앗겨 정작 국가지대사인 차세대 성장동력 사업에는 소홀했던 게 사실이다. 더욱이 부처는 부처대로, 업계는 업계대로 당장의 밥그릇 싸움에 매달려 차세대 성장동력사업의 밑거름이라 할 수 있는 통·방융합 환경조차 제대로 만들어내지 못했다. 민·관·연이 다시 한번 위기의식으로 재무장하고 차세대 성장동력 사업에 전력을 다할 수 있는 환경부터 만들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