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할머니께선 두부를 손수 만들어 주셨다. 콩을 한나절 이상 물에 불려 맷돌에 갈아내고 콩물과 찌꺼기를 분리한 후 콩물을 끓인다. 끓인 콩물에 간수를 넣어 응고되면 이를 건져 나무틀에 넣고 힘껏 눌러 두부를 만들었다. 막 만들어 온기가 그대로 남아 있는 두부는 양념장을 얹지 않아도 두부 그 자체만으로도 훌륭한 음식이 됐다.
두부를 만들면서 나온 콩찌꺼기 비지는 며칠을 두고 먹는 찬거리다. 비지찌개 또는 비지떡으로 상에 올랐다. 하지만 비지에 밀가루를 섞어 차지게 한 후 기름을 둘러 부쳐낸 비지떡의 맛은 기대 이하였다. 모양은 녹두 빈대떡과 닮았지만 맛은 그에 훨씬 못 미쳤다. 보잘것없는 것을 일컫는 ‘싼 게 비지떡’이란 말도 그래서 나온 듯하다.
싸고 좋은 것이 있다면 금상첨화겠지만 상술이 가미된 상품은 ‘싼 게 비지떡’이 될 공산이 크다. 우리나라에서 공공을 비롯한 거의 모든 분야의 입찰방식은 최저가격 낙찰제다. 업자들은 사업을 따려면 공공기관의 예산을 크게 밑도는 가격을 써내야 한다. 예산 자체가 박하게 책정됐음에도 불구하고 경쟁자를 따돌리기 위해선 시쳇말로 가격을 후려쳐야만 한다. 손해 보는 장사란 없는 법. 업자는 이익을 보전하기 위해 최고·최상이 아닌 최저·최하의 서비스를 제공해야만 하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이런 과정에서 ‘비지떡’이 양산되게 마련이다.
이 같은 폐단을 알고 있는 주요 선진국은 최저가 낙찰방식을 포기한 지 오래다. 우리도 형식적으로는 기술과 가격평가 비중을 8대 2로 놓고 기술력에 더 많은 배점을 준다. 하지만 20%에 불과한 가격 비중이 당락을 결정짓는 모순을 해소하기엔 역부족이다. 개선이 절실한 대목이다.
최근 정부가 국내 소프트웨어 산업발전이라는 큰 틀에서 개선방안 모색에 나섰다. 크게 반길 일이다. 대통령이 이를 직접 챙기는 것도 매우 고무적이다. 대통령은 예가 산정에서 발주에 이르는 전 과정을 합리화, 혁신할 수 있는 방안마련을 주문했다. 방안이 마련될 때마다 수시로 보고해 줄 것도 당부했다. 또 1년이 지난 후 얼마나 개선됐는지 직접 확인할 것도 약속했다.
정부의 의지와 더불어 이젠 관련 업계도 변해야 할 때다.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듯 업계도 정직한 수주로 화답할 수 있어야 한다. 출혈경쟁으로 인한 ‘비지떡’을 더는 만들어선 안 된다.
◆컴퓨터산업부 최정훈기자@전자신문, jhcho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