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절반의 실패

박희범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를 KAIST 총장으로 영입했던 과학기술부의 첫 시험무대는 실패로 막을 내렸다. 엄밀하게 따진다면 적어도 KAIST의 이미지 제고 및 세계화 사업은 성공한 셈이니 ‘절반의 실패’로 부르는 게 맞을 듯싶다.

 글로벌라이제이션 프로젝트 예산으로 5년간 1000억원을 확보하고 자동차기술대학원·금융전문대학원·정보미디어대학원 등을 유치, 개원하는 등 그 나름대로 KAIST의 초석을 놓으려고 했던 점은 높이 평가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버트 러플린 총장의 이번 낙마는 유례 없었던 외국인 총장의 ‘이상’과 KAIST의 ‘현실’이 맞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러플린 총장은 자력갱생을 KAIST의 궁극적인 발전방향으로 내세우며 이의 실현을 앞당기기 위해 절치부심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발목을 잡은 것은 바로 연구 중심 대학으로 육성해 온 KAIST의 설립취지와 맞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또 사업 확대 및 교수 평가 과정에서 교수들의 동의를 거의 얻지 못한 점도 낙마의 주요 요인으로 작용했다.

 러플린 총장의 진퇴 여부를 결정하는 KAIST 이사회가 지난 28일 밤 장장 4시간이 넘는 진통을 겪으며 진행된 것만 봐도 잘 알 수 있다.

 KAIST 고위 관계자는 “이사들이 KAIST를 살리기 위해 러플린 낙마에 동의는 했지만 얼굴 표정은 분노 그 자체였다”며 현장 모습을 전했다. 그는 또 “러플린 총장이 모든 교수를 용서할 수 있지만 뒤에서 칼을 들이댄 것은 참을 수 없다는 말을 했다”며 “정부 측에서도 이 점을 잘 알고 있고 특히 교수 집단행동에 대해 부담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아무튼 KAIST는 이제 새로운 총장을 맞아들여야 한다. 현재 러플린 총장 이후의 수습책 논의에 바쁜 행보를 보이고 있다.

 러플린 총장이 지난 2004년 7월 KAIST에 첫발을 디딜 때 재학생과 교직원 200여명이 모여 꽃다발을 걸어주며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에 대한 기대감을 한껏 부풀렸었다. KAIST가 후폭풍을 맞고 쓰러질지, 방향타를 다시 틀어쥐고 순항할지 지켜보는 눈이 많다.

◆대전=경제과학부 박희범기자@전자신문, hbpa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