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공인전자문서보관소의 역할](https://img.etnews.com/photonews/0603/060331114901b.jpg)
서양 역사가들은 당나라 번장 고선지 장군의 탈레스 전투를 세계사적 사건으로 기록하고 있다. 다름 아닌 종이의 서양 전래는 여기에서 시작된다. 이후 종이는 기록매체로서, 의사표현의 물리적 수단으로서 다른 경쟁수단 없는 독점매체로 성장했다.
종이매체 사용은 정보통신 사회라는 오늘날까지도 변함이 없다. 처리해야 할 정보의 양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정보화 사회에서 정보량 증가는 곧 물리적인 공간의 증가와 그와 관련된 인력 및 비용의 증가와 동일시할 수 있다는 것은 종이가 만들어낸 아이러니다.
각종 시스템 등으로 무장한 기업의 ‘e비즈니스’는 종이문서를 대체하기는커녕 오히려 그 거창한 이름에 어울리지 않게 A4용지의 매출액만 높였을 뿐이며, 종이와 전산의 이중적인 유지에 따른 비용은 고스란히 기업이나 소비자 몫으로 전가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아이러니와 이중투자 배경에는 내용 변경이 용이한 전자문서의 위약점이라는 한계가 자리하고 있다. 이러한 전자문서의 위약점을 해소하기 위한 방안의 하나로서 착안한 것이 ‘신뢰할 수 있는 제3자 기관(TTP)에 의한 보관’이다. 그 결실이 바로 공인전자문서보관소라는 제3자 기관을 탄생시킨 전자거래기본법의 개정이다.
전자문서 보관에 제3자 기관을 개입시켜 법적 추정력을 부여하며 이를 통한 미래 안정성을 꾀함으로써 전자문서의 크나큰 장점을 고스란히 살릴 수 있음은 본 제도의 핵심이다.
우리는 공인전자문서보관소의 발전 가능성을 그 제도적인 완결성에서보다는 현실적 필요성에서 찾을 수 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주변에서 종이가 하나둘 사라지기 시작했다. 대형마트에서는 종이 전표 대신 사인패드에 서명을 요구하며, 은행 내부나 편의점의 ATM기는 영수증 없이 현금만을 내놓을 뿐이다. 공인전자문서보관소는 이러한 시도들에 날개를 달아 줄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다. 사라진 종이문서에 생명력을 불어넣어 전자문서로서 새로운 e비즈니스 모델을 창출하는 것, 이는 이후 우리에게 부여된 과제일 것이다.
세계적으로 보면 특수한 필요성에 따라 전자문서를 보관 및 증명하는 제3자 기관이 다수 존재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처럼 법률적 추정력을 부여하지는 않으며 단지 현실적인 증명 기능만을 가질 뿐이다. 미국 전자문서 회사나 일본이 그러하다.
공인전자문서보관소는 이러한 개념하의 세계 최초 사건이다. 우리나라에서 세계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은 것이 많았지만 공인전자문서보관소는 가히 ‘IT 강국-한국’에서 나올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모델이라 자부한다. 일본도 e문서법에 의한 전자문서 관련 비즈니스 모델이 있기는 하지만 개념이 협소하고 적용 대상이 제한적이다.
공인전자문서보관소는 단순히 전자문서만을 담는 그릇이 아니다. e비즈니스 발전 단계에서 출현하는 각종 전자적 형태의 문서가 그 보관의무의 존재 여부와 관계없이도 보관 대상으로 확대돼 갈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초기 단계의 공인전자문서보관소 발전을 위해서는 이러한 보관의 이면에 법적·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그동안 전자문서 효력을 부인하는 28개 법률, 56개 조항이 다듬어졌지만 아직도 보완되고 수정돼야 할 많은 법적인 문제가 있다고 본다. 지속적인 개선을 통해 전자문서가 효율적으로 활용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공인전자문서보관소가 향후 발전하는 우리 사회에서 e비즈니스와 유비쿼터스 환경의 핵심적 기능으로 자리매김하며 진정한 기업 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는 것, 이것이 공인전자문서보관소 제도가 추구하는 바다.
사업 시행 초기에 생겨날 수도 있는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공청회와 많은 전문가 토론을 거치고 있으며, 장기적인 사업 로드맵과 시범사업을 통한 비즈니스 모델 활성화 방안도 연구되고 있다. 수요자나 공급자 모두 공인전자문서보관소에 관심을 갖고 이것이 우리 사회를 어떻게 변화시켜 나갈지, 어떤 방식으로 참여해야 할지 진지하게 고민해보는 것이 필요한 때다.
◆김종희 한국전자거래진흥원장 jhkim@kiec.or.kr